똑같은 백반을 먹어도 밥을 먼저 뜨느냐 나물이나 국을 먼저 떠먹느냐에 따라 식후 혈당이 오르는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다이어트나 혈당 관리를 위해 흔히 먹는 양을 줄이는 데만 집중하지만, 전문가들은 같은 칼로리라도 먹는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 혈당 반응 곡선이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식후 혈당은 음식을 먹은 뒤 소장에서 포도당이 얼마나 빠르게 흡수되는지에 따라 오르내림의 폭이 결정된다. 정제된 탄수화물을 공복 상태에서 그대로 섭취하면 혈당이 짧은 시간에 가파르게 치솟았다가 급격히 떨어지는 이른바 혈당 스파이크가 나타나기 쉽다. 이런 변동 폭이 반복되면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주목받는 방법이 식사 순서 조절이다. 채소나 나물처럼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을 먼저 먹고, 고기·생선·두부 같은 단백질 반찬을 그다음에 먹은 뒤, 밥이나 면 등 탄수화물을 마지막에 먹는 방식이다. 같은 음식을 같은 양만큼 먹더라도 순서만 바꾸면 식후 혈당이 오르는 속도와 폭이 완만해진다는 보고가 여러 나라에서 나오고 있다.
식이섬유를 먼저 섭취하면 위와 소장에서 점성이 있는 막이 형성돼 뒤이어 들어오는 탄수화물이 위에서 소장으로 넘어가는 속도, 즉 위 배출 속도가 늦춰진다. 또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먼저 섭취하면 소장에서 인크레틴이라는 호르몬 분비가 촉진돼 인슐린이 더 효율적으로 작용하도록 돕는다는 것이 국내외 학회들이 공통으로 설명하는 기전이다.

채소·단백질 먼저 밥은 나중에 [그림=메디닉스DB]
대한당뇨병학회와 미국당뇨병협회 등은 이런 식사 순서 조절이 당뇨병 전단계에 있거나 제2형 당뇨병 진단을 받은 사람에게 특히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안내한다. 약물 없이도 식후 혈당 변동 폭을 줄이는 생활 습관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혈당 조절 약을 이미 복용 중인 환자는 임의로 식사 순서만 바꾸고 약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함께 강조된다.
혈당 관리가 특별히 필요하지 않은 일반인에게도 식사 순서 조절은 의미가 있다. 식후 혈당이 급격히 오르내리면 곧이어 허기와 식곤증을 다시 느끼기 쉬워 간식이나 야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채소와 단백질을 먼저 먹어 포만감을 채운 뒤 탄수화물을 나중에 먹으면 전체 식사량 자체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다만 식사 순서만 바꾼다고 해서 과식이나 고열량 식단의 영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순서 조절이 식후 혈당 곡선을 완만하게 만드는 보조적인 방법일 뿐, 전체 섭취 칼로리와 탄수화물의 양, 식사의 질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선을 긋는다. 순서를 지키더라도 밥과 면, 빵 같은 정제 탄수화물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혈당 상승을 막기 어렵다.

혈당 측정은 순서 조절의 보조 수단 [그림=메디닉스DB]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밥상을 차릴 때 국이나 나물, 샐러드처럼 식이섬유가 많은 반찬을 먼저 몇 숟가락 먹고, 고기나 생선, 달걀, 두부 같은 단백질 반찬을 이어서 먹은 뒤, 밥과 국물을 마지막에 먹는 순서를 습관화하면 된다. 백미밥보다 잡곡밥을 선택하면 식이섬유 섭취가 늘어나 효과가 더 뚜렷해질 수 있다.
식사 순서와 함께 먹는 속도도 혈당 반응에 영향을 준다. 음식을 빨리 삼키면 순서를 지키더라도 혈당이 짧은 시간에 몰려 올라갈 수 있으므로, 한 끼 식사에 15분에서 20분 이상 시간을 들이고 꼭꼭 씹어 먹는 습관을 함께 들이는 것이 좋다. 외식이나 배달 음식을 먹을 때도 국물이나 채소 반찬부터 손을 대는 순서를 지키면 도움이 된다.
공복 혈당이나 식후 혈당이 지속적으로 높게 나오거나 다뇨, 다갈, 체중 감소 같은 증상이 동반된다면 식사 순서 조절만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 혈당과 당화혈색소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질병관리청은 공복 혈당 장애나 당뇨병 전단계로 확인된 경우 정기적인 검진과 함께 전문의와 상담해 식습관 교정 계획을 세울 것을 권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