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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이성 눈암, ‘CDS1-CDS2 유전자’에서 치료 실마리 찾다
매년 영국에서 600명가량 진단받는 희귀암 ‘포도막 흑색종(안구 흑색종)’에 새로운 치료의 실마리가 발견됐다. 최근 국제 공동연구진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이 암세포가 특정 유전자 쌍(CDS1과 CDS2)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를 이용한 표적치료 가능성이 확인됐다. 이 연구는 세계적 학술지 Nature Genetics에 게재됐다. 이번 연구는 영국 웰컴 생거 연구소(Wellcome Sanger Institute)와 미국·영국 병원들이 협력해 진행됐으며, 유전자 편집 도구인 CRISPR-Cas9을 이용해 안구 흑색종 세포의 생존에 필수적인 유전자와 유전자쌍을 찾아냈다. 10개 안구 흑색종 세포주를 대상으로 유전자를 개별 혹은 쌍으로 차단했을 때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를 분석한 결과, CDS1과 CDS2 유전자 간의 상호작용이 암세포 생존에 치명적인 역할을 하는 ‘합성치사(synthetic lethality)’ 관계임이 밝혀졌다. 두 유전자는 세포막 구성과 신호전달에 관여하는 ‘포스포이노시타이드’ 합성 효소를 인코딩하는데, 연구진은 CDS1의 발현이 낮은 암세포가 CDS2에 강하게 의존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 경우 CDS2를 차단하면 암세포는 정상적인 인지질 합성이 불가능해지며 생존하지 못하게 된다. 반면 CDS1 발현이 정상인 세포는 CDS2가 억제돼도 생존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아, 건강한 세포는 보존하면서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됐다. 흥미로운 점은 CDS1의 저발현 현상이 안구 흑색종뿐만 아니라 다른 암종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다른 암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해 다양한 암에서 CDS1 발현이 낮은 경우가 존재함을 확인했고, 이 유전자쌍을 표적으로 삼은 치료법이 다른 암종에도 효과를 낼 수 있을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임상 경험이 부족하고 치료 옵션이 제한적인 희귀암 환자에게 이번 연구는 반가운 소식이다. 현재 포도막 흑색종은 방사선이나 안구 절제 외에는 뚜렷한 치료 방법이 없으며, 절반가량은 2~3년 내 간으로 전이돼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에 대해 연구팀의 첫 저자인 제니 푸이 잉 챈 박사는 “이 유전자쌍의 의존 관계는 안구 흑색종을 비롯한 여러 암에서 새로운 맞춤형 치료의 열쇠가 될 수 있다”며 희망적인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번 발견은 CRISPR 기술을 활용한 유전체 기반 암 치료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로, 향후 표적치료제 개발과 희귀암 치료 접근성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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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억제제 없이 이식 성공…줄기세포가 바꾼 신장이식의 미래
장기이식 후 평생 복용해야 하는 면역억제제는 거부 반응을 막는 핵심 치료지만, 감염과 암 위험, 일상적 부작용까지 감수해야 하는 ‘양날의 검’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미국 Mayo Clinic을 포함한 연구진이 면역억제제를 완전히 중단하면서도 장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혁신적 치료법을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미국 이식학회지(American Journal of Transplantation)에 발표된 이번 연구는 신장 이식과 함께 형제에게서 줄기세포까지 이식받는 ‘이중 이식’ 방식으로, 1년 후 면역억제제를 모두 끊는 것을 목표로 했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의 75%가 2년 이상 약을 복용하지 않고도 이식된 장기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30년 넘게 장기이식 연구를 이끌어온 Mayo Clinic의 Mark Stegall 박사는 “지금까지 다양한 연구 성과가 있었지만, 이 연구는 그중에서도 가장 흥분되는 결과”라며 “면역억제제 없이 이식된 장기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것은 오랜 꿈이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Mayo Clinic이 주도하는 ‘이식 혁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신장과 줄기세포를 동시에 기증하는 생물학적 형제 간 이식을 기반으로 한다. 기증자는 자신의 신장과 조혈모세포를 함께 제공하며, 수혜자는 이식 후 방사선 치료를 거친 뒤 줄기세포를 주입받고 1년 후 면역억제제를 중단하는 과정을 거친다. 실제 이식 수혜자 마크 웰터 씨는 다낭신으로 신장이식을 받아야 했고, 여동생 신디 켄달 씨가 기꺼이 신장과 줄기세포를 기증했다. 그는 3년 넘게 약을 복용하지 않고 있으며, “이식 수술 전처럼 건강한 상태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신디 씨 역시 “오빠가 약 없이 손주들을 보고, 두 딸의 결혼을 지켜볼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다만 이 치료법은 아직 조직 적합성이 높은 형제 사이에서만 적용되고 있으며, 향후 비혈연 또는 낮은 조직 일치도를 가진 이식 상황에서도 줄기세포 이식이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Mayo Clinic의 이식신장내과 전문의 Andrew Bentall 박사는 “면역억제제를 10년 이상 유지해도 중단 시 거부반응이 발생할 수 있다”며 “줄기세포를 통한 면역 관용 유도는 앞으로 장기 이식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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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 미만도 안심 못 한다 — 조기 발병 대장암, 세계적 증가세
최근 《브리티시 저널 오브 서저리(British Journal of Surgery)》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50세 미만 성인에서 조기 발병 위장관암(GI cancer)의 발생률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조기 발병 대장암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고소득 국가에서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15~19세 청소년의 경우 333% 증가한 수치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전체 대장암 환자 중 조기 발병 환자의 비중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0년대 초반부터 20~30대에서 대장암 발생이 눈에 띄게 늘었으며, 1990년생은 1950년생보다 결장암 발생 위험이 2배, 직장암 위험은 무려 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조기 진단 효과로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암 발생 자체의 패턴 변화로 해석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분석에 따르면, 조기 발병 대장암은 현재 50세 미만 남성의 암 사망 원인 1위, 여성의 경우 2위로 나타났다. 인종별로는 흑인, 히스패닉, 아메리카 원주민, 아시아계에서 특히 높은 조기 진단률을 보이며, 의료접근성과 인식의 차이도 격차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문제는 조기 발병 환자들이 진단 시기에 있어 불리하다는 점이다. 본인이나 의료진 모두 젊은 나이 때문에 암을 의심하지 않고, 결국 병이 상당히 진행된 후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생존율 향상에 명확한 이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더 공격적인 치료를 받는 일이 잦다. 또한 30~40대 암 환자들은 암 치료와 동시에 육아, 경제활동, 생식계획 등 삶의 핵심 시기를 병과 함께 보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환자가 ‘치료가 생식능력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의사와 충분한 상담을 받지 못했다고 답해, 정서적·사회적 지원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연구진은 이 같은 경향의 배경으로 소아청소년기 비만, 서구화된 식단, 비알코올성 지방간, 흡연 및 음주 습관 등을 지목한다. 실제로 미국 내 여성 8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인 여성은 조기 발병 대장암 위험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결과도 보고됐다. 전문가들은 이제 대장암은 중장년층만의 질환이 아니라며, 조기 검진 연령 하향 및 생활습관 교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암 발생 연령대 변화에 맞는 스크리닝 체계와 생애주기별 맞춤 의료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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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가 치아를 닳게 한다? — 식물 속 미세입자, 치아 표면 손상 유발 가능성 밝혀져
건강을 위한 식단에서 빠질 수 없는 채소가 오히려 치아 손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인간 신체에서 가장 단단하다고 알려진 치아 에나멜이 채소에 포함된 미세 실리카 입자, 즉 식물석(phyolith)에 의해 마모되고 손상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영국왕립학회 인터페이스 저널(Journal of the Royal Society Interface)에 발표됐다. 연구팀은 밀 줄기와 잎에서 추출한 오팔린 식물석을 PDMS 기반 합성 매트릭스에 주입해 인공 잎을 제작했다. 이 인공 잎은 실제 채소와 유사한 두께와 탄성을 가지며, 사람의 지치(사랑니)에서 추출한 치아 샘플과 접촉하도록 설계됐다. 실험에서는 저작 동작을 시뮬레이션한 장치를 통해 반복적인 압력과 마찰을 가했으며, 이후 고해상도 현미경과 분광분석으로 치아의 물리·화학적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식물 조직이 단순히 부드럽다고 해서 치아에 해가 없다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식물석 입자 자체는 마찰이 반복되면서 일부 파괴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치아 표면의 에나멜은 광물 성분이 감소하고 마모 흔적이 남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놀라운 점은 치아 손상의 주요 기전이 기존에 알려진 ‘균열에 의한 파절’이 아닌, 미세구조의 약점으로 인한 ‘준소성(quasi-plastic)’ 변형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오랜 시간 누적된 압력과 마찰에 의해 치아 에나멜이 점진적으로 변형되고 약화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식물석은 식물이 토양에서 흡수한 용해성 실리카가 식물의 잎, 줄기 등으로 이동해 침전되며 생성되는 미세한 입자로, 식물의 구조적 강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입자가 반복적으로 치아와 접촉할 경우, 의도치 않은 치아 마모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물론 이는 채소 섭취를 줄이거나 피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인류학, 고생물학, 식이 행동 분석, 수의학 및 구강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교차적으로 응용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앞으로 치아 건강과 식습관 간의 미묘한 관계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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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구용 반코마이신, 재발성 C. 디피실 감염 예방 효과 불확실…“잠재적 가능성은 여전”
항생제 사용 후 발생하는 재발성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Clostridioides difficile, 이하 C. 디피실) 감염의 예방책으로 저용량 경구 반코마이신 투여가 제안되어 왔지만, 그 효과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최근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캠퍼스 주도 연구팀은 반코마이신의 예방적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무작위 이중맹검 임상시험을 진행했으나,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를 도출하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2018년부터 2023년까지 4개 기관에서 진행됐으며, 180일 이내에 C. 디피실 감염을 겪었고, 다른 이유로 항생제를 새롭게 복용하게 된 성인 환자 81명을 대상으로 했다. 이들은 항생제 복용 기간 동안 매일 125mg의 경구용 반코마이신 또는 위약을 복용했고, 투약은 항생제 종료 후 5일간 연장됐다. 결과적으로 재발성 C. 디피실 감염은 반코마이신군 43.6%, 위약군 57.1%로 반코마이신군에서 13.5%포인트 낮았지만, 95% 신뢰구간이 -35.1%에서 +8.0%까지 넓게 분포했고, p값은 0.22로 유의수준을 넘지 못했다. 즉, 통계적으로는 우연에 의한 차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반코마이신 내성을 지닌 장내 장구균(VRE, Vancomycin-resistant Enterococcus) 검출률은 반코마이신 투약군에서 50%로, 위약군의 24%에 비해 유의하게 높았다(p=0.048). 이는 예방적 투약이 장내 내성균 확산에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진은 당초 최소 150명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한 방문 제한과 반코마이신을 사전 복용 중인 환자의 참여 거부로 인해 최종 모집 인원이 절반에 그치면서 통계적 검정력이 낮아진 점을 한계로 지적했다. 연구 책임자인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감염내과팀은 “이번 결과만으로 반코마이신의 예방 효과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정 수준의 감염 재발 감소 경향은 관찰되었다”며 “보다 대규모의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와 내성 발생 위험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C. 디피실은 항생제 사용 후 장내 유익균이 감소하며 기회를 잡는 병원성 세균으로, 재발률이 높고 치료가 어려워 감염관리 및 예방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고위험군 환자에게 있어 예방적 항생제 투여는 선택 가능한 옵션 중 하나로 고려될 수 있지만, 내성균 확산이라는 이중적 위험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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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형 하이드로젤, 만성 상처 치료에 새 길을 열다
만성 상처는 현대 의료에서 해결이 시급한 과제로,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에 따라 의료 시스템에 막대한 부담을 주고 있다. 특히 당뇨병이나 순환기 질환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피부 병변은 수개월, 수년에 걸쳐도 아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과도한 염증 반응이 지속되며 신체가 재생 대신 방어에 치중하게 되는 악순환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으로 ETH 취리히의 연구진이 주목받고 있다. 박사과정 중 혁신적인 하이드로젤 드레싱을 개발한 뵈르테 에미로글루 박사는 “상처가 염증 상태에 머물지 않도록 유도하고, 조직이 회복 단계에 들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그녀가 고안한 기술은 선택적으로 염증 신호만 포착하는 ‘스펀지형 마이크로젤’이다. 이 젤은 실험실에서 보면 젤리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내부에는 특정 염증 유발 분자와 결합하는 리간드가 부착되어 있어, 일반적인 상처 드레싱처럼 모든 분자를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유해 신호만을 골라낸다. 이는 일반적인 기계적 흡입 방식이나 비특이적 드레싱보다 훨씬 정밀한 치료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기술의 영감은 생물학에서 비롯되었다. 단세포 생물의 물질 교환 원리부터 복잡한 조직 간의 신호전달까지, 자연의 효율적인 시스템을 모사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 구조를 바탕으로 다양한 환자와 상처 유형에 맞게 드레싱을 맞춤화할 수 있도록 마이크로젤 구성 요소의 ‘라이브러리’를 확장하고 있다. 기술의 응용 범위도 넓다. 현재는 만성 피부 상처에 집중하고 있지만, 향후 뼈, 연골, 힘줄 등 혈류 공급이 적은 내부 조직의 재생에도 활용될 수 있다. 실제로 해당 기술을 바탕으로 한 스타트업 ‘이뮤노스폰지(Immunosponge)’는 상처 치유를 방해하는 신호를 정밀하게 차단해, 초기 단계부터 효율적인 재생을 유도하는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에미로글루 박사는 2025년 4월부터 ETH 취리히의 ‘파이오니어 펠로우십’을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그녀는 “연구를 넘어 시장, 임상의, 사용자의 관점을 배우고 있다”며 “단기적인 상용화보다는 장기적인 가치를 목표로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이 지능형 드레싱 기술이 만성 상처 치료에 실질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의료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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