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나 방광염 등 흔한 감염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처방받은 항생제가 듣지 않아 치료가 길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세균이 항생제에 내성을 갖게 되면서 기존 약물로는 감염을 제어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자, 세균만을 표적으로 삼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를 활용한 치료법이 학계에서 다시 조명받고 있다.
박테리오파지는 세균을 숙주로 삼아 증식하는 바이러스의 한 종류로, 사람이나 동물 세포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특정 세균만을 정밀하게 공격하는 특성을 지닌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바이러스 가운데 가장 흔한 축에 속하며, 토양이나 하수, 사람의 장내 환경 등 다양한 곳에서 발견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 감염은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며, 기존 항생제로 치료가 어려운 이른바 슈퍼박테리아 감염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항생제 내성을 인류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으며 대안 치료법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파지요법의 원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특정 세균을 감염시키는 파지를 환자의 체내에 투여하면, 파지가 목표 세균의 세포 안으로 침투해 증식하다가 결국 세균을 파괴하고 밖으로 빠져나온다. 이 과정에서 정상 세균총이나 인체 세포는 크게 손상되지 않는다는 점이 항생제와 다른 특징으로 꼽힌다.

세균만 골라 공격하는 바이러스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그림=메디닉스DB]
해외에서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항생제 내성균 감염 환자를 대상으로 파지요법의 안전성과 효과를 확인하는 임상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만성 폐 감염이나 당뇨병성 족부궤양처럼 항생제 치료 반응이 낮은 감염에서 시험적으로 파지를 활용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국내에서도 관련 학계를 중심으로 박테리오파지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직 상용화된 치료제는 없지만, 항생제 내성균 감염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파지 은행을 구축하거나 국내 세균주에 맞는 파지를 발굴하려는 기초 연구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파지요법이 모든 감염에 적용될 수 있는 만능 해법은 아니다. 파지는 특정 세균 균주에만 작용하는 경우가 많아 환자의 감염균에 맞는 파지를 찾아내는 과정이 까다롭고, 세균이 파지에 대해서도 저항성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풀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항생제 반응이 없다면 임의 사용 말고 의료진과 상담해야 [그림=메디닉스DB]
제조와 품질관리 기준을 표준화하는 작업도 아직 진행 중이다. 파지는 생물학적 제제인 만큼 배양과 정제 과정에서 일관된 품질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고, 국가별로 허가 기준이 다르게 마련되고 있어 국제적으로 통일된 임상 지침이 자리잡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현재로서는 파지요법이 국내에서 정식 치료법으로 승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환자들이 분명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항생제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임의로 파지 관련 제품을 구해 사용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으며, 반드시 의료진과 상담을 거쳐 임상시험 참여 여부 등을 검토해야 한다.
항생제 내성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처방받은 항생제를 의사의 지시대로 정해진 기간과 용량에 맞춰 복용하고, 증상이 나아졌다고 임의로 복용을 중단하지 않는 것이다. 감염 증상이 오래 지속되거나 항생제 치료 후에도 열이나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지체하지 말고 의료기관을 다시 찾아 진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