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 들었다가 배우자나 룸메이트에게 이 가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쳤다는 말을 듣고 놀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작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 채 매일 밤 이를 갈거나 꽉 무는 습관이 이어지고, 아침이면 턱이 뻐근하거나 두통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이갈이는 특정 원인 하나로 설명되지 않고 스트레스, 치아 구조, 수면 질환, 생활습관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학적으로 이갈이는 수면 중 무의식적으로 위아래 치아를 갈거나 악물어 마찰음을 내는 현상을 말하며, 자면서 나타나는 수면 이갈이와 낮에 집중하거나 긴장할 때 나타나는 각성 이갈이로 나뉜다. 성인 상당수가 살면서 한 번 이상 경험하는 흔한 증상이지만, 습관이 오래 지속되면 치아와 턱관절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원인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흔히 거론되는 원인은 스트레스와 불안이다. 업무나 학업, 대인관계에서 오는 긴장이 수면 중 턱 근육 활동으로 이어져 이를 갈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시험 기간이나 이직, 이사 등 생활에 큰 변화가 있을 때 이갈이가 심해졌다는 경험담이 많고, 관련 학회도 심리적 긴장을 대표적인 유발 요인으로 꼽고 있다.
치아 배열이 맞지 않는 부정교합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위아래 치아가 정확히 맞물리지 않으면 씹을 때 특정 부위에 힘이 쏠리고, 신체는 무의식적으로 교합을 맞추려는 움직임을 반복하면서 이갈이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래된 보철물이나 충치 치료 후 높이가 맞지 않는 경우에도 비슷한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정기적인 치과 검진이 필요하다.

부정교합도 이갈이 원인 중 하나로 꼽혀 [그림=메디닉스DB]
수면 무호흡증 같은 수면장애와의 연관성도 주목받고 있다. 자는 동안 기도가 좁아져 호흡이 불안정해지면 몸이 각성 상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턱 근육이 긴장하며 이갈이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코골이가 심하거나 낮에 유독 졸음을 자주 느낀다면 이갈이와 수면 문제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카페인, 술, 담배 같은 생활습관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카페인은 각성 효과로 근육 긴장을 높이고, 음주는 수면의 질을 떨어뜨려 얕은 잠 단계에서 이갈이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약물 복용 후 이갈이가 새로 생기거나 심해졌다는 보고도 있어, 증상이 갑자기 나타났다면 복용 중인 약을 확인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어린이의 이갈이는 성인과 원인이 다소 다르다. 유치가 나고 빠지며 영구치로 바뀌는 과정에서 치아 높이가 맞지 않아 일시적으로 이를 갈 수 있고, 성장 과정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줄어든다. 다만 치아 마모가 심하거나 아이가 턱 통증을 호소한다면 소아치과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이갈이 방치하면 턱관절장애로 이어질 수 있어 [그림=메디닉스DB]
이갈이를 방치하면 치아 표면이 점차 닳아 시리거나 깨지기 쉬워지고, 턱관절에 지속적인 부담이 가해지면서 입을 벌릴 때 소리가 나거나 통증이 느껴지는 턱관절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두통이나 목과 어깨 결림, 귀 주변 불편감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원인을 모른 채 다른 질환으로 오해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본인은 이를 가는 사실을 자각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동거인의 제보나 아침에 느끼는 턱 통증으로 뒤늦게 알아차리는 경우가 흔하다. 치과에서는 치아 마모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수면다원검사 등을 통해 수면장애 동반 여부를 함께 살펴본다. 스스로 진단하기보다 전문가의 검진을 통해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이 우선돼야 한다.
생활 속에서는 취침 전 카페인과 음주를 줄이고, 스트레칭이나 명상 등으로 긴장을 이완하는 습관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증상이 심하면 치과에서 맞춤 제작한 마우스피스를 착용해 치아 마모와 턱관절 손상을 줄이는 방법도 활용된다. 아침에 턱 통증이나 두통이 반복되거나 치아가 눈에 띄게 닳았다면 미루지 말고 치과를 방문해 정확한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