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를 틀기 전 물통 뚜껑을 열어보면 바닥에 뽀얀 얼룩이나 미끈거리는 막이 붙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매일 쓰는 가습기라도 물통 세척을 며칠씩 미루면 이런 물때가 쌓이기 쉽고, 그 안에서 세균이 번식할 수 있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은 생활위생의 사각지대다.
물때는 단순히 보기에 지저분한 수준을 넘어 세균이 자리 잡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물속 미네랄 성분이 가라앉아 생긴 막 위에 습기가 계속 머물면, 빛이 들지 않는 물통 내부는 온도와 수분이 일정하게 유지돼 미생물이 번식하기에 알맞은 조건이 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균은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이 균은 물이 있는 환경에서 잘 자라는 특성이 있어 가습기 물통, 배수구, 수족관 등에서 흔히 검출된다. 건강한 성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면역력이 약한 영유아나 고령자, 호흡기 기저질환자는 감염에 더 취약하다.
물때를 방치하면 세균이 얇은 막을 형성하는 생물막 상태로 넘어갈 수 있다. 이 막은 세균을 외부 자극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해, 단순히 물로 헹구거나 약한 세척만으로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막이 두꺼워지고 균이 더 단단히 자리를 잡는다.

물때 방치 시 생물막으로 굳어지는 과정 [그림=메디닉스DB]
문제는 이렇게 자란 세균이 가습기가 뿜어내는 미세한 수증기 입자에 섞여 공기 중으로 퍼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초음파식 가습기는 물을 가열하지 않고 진동으로 미스트를 만들기 때문에 세균이 열에 의해 죽지 않고 그대로 실내로 확산될 가능성이 가열식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녹농균 외에도 레지오넬라균처럼 물을 매개로 번식하는 다른 세균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가정용 가습기나 분무장치를 정기적으로 세척하지 않으면 호흡기 감염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권고해왔다. 영유아나 기저질환이 있는 가족이 함께 지내는 집이라면 더 신경 써야 한다.
전문가들은 가습기 물은 하루에 한 번씩 비우고 새 물로 채우며, 물통과 수조는 최소 2~3일에 한 번씩 세척할 것을 권한다. 세척할 때는 물에 식초나 과탄산소다를 희석해 부드러운 솔로 물통 안쪽 구석구석을 닦아내는 방법이 흔히 추천된다.

식초 희석액과 솔로 물통 안쪽 닦아내기 [그림=메디닉스DB]
세척 시 염소계 세제나 락스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가습기는 물을 분사하는 기기이기 때문에 세제 성분이 완전히 헹궈지지 않으면 미스트를 통해 그대로 흡입될 위험이 있다. 세척 후에는 맑은 물로 여러 차례 헹궈 세제 성분이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필터나 초음파 진동자 부위처럼 손이 잘 닿지 않는 부분도 소홀히 하기 쉬운 곳이다. 사용설명서에 안내된 분해 방법에 따라 분리해 닦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물을 완전히 비우고 물통과 본체를 바짝 말려서 보관하는 것이 균 증식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가습기를 켜둔 방에서 지내다가 마른기침이 잦아지거나 미열, 호흡 곤란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가습기 사용을 즉시 멈추고 물통 세척 상태를 점검해보는 것이 좋다. 증상이 며칠 이상 이어지거나 영유아나 고령자에게 나타난다면 자가 판단보다는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