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지며 보일러를 다시 가동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여름철 내내 쓰지 않던 온수기나 샤워기를 오랜만에 켰을 때 미지근한 물에서 비릿한 냄새가 나거나 뿌연 물이 나온 경험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오래 멈춰 있던 온수 설비 내부에 레지오넬라균이 자랄 수 있어 재가동 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레지오넬라균은 토양이나 하천 등 자연환경에 흔히 존재하는 세균으로, 사람에게는 주로 오염된 물에서 발생한 미세한 물방울, 즉 에어로졸을 호흡기로 들이마실 때 감염된다. 물을 마셔서 감염되는 경우는 드물고, 샤워기나 수도꼭지, 냉각탑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작은 물방울을 들이마시는 것이 주된 경로로 알려져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레지오넬라균은 섭씨 25도에서 45도 사이의 물에서 가장 잘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여름철 더위가 한창일 때는 온수를 거의 쓰지 않아 보일러나 온수기 내부의 물이 오랫동안 고여 있게 되는데, 이 구간의 온도가 레지오넬라균 증식에 알맞은 조건을 만들어 줄 수 있다.
특히 환절기에는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커지면서 보일러를 켜는 가정이 급격히 늘어난다. 여름 내내 멈춰 있던 온수 설비를 다시 켜는 순간, 설비 안에 고여 있던 물과 그 안에서 자란 세균이 수도꼭지나 샤워기를 통해 한꺼번에 뿜어져 나올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온수 설비 재가동 초기 물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림=메디닉스DB]
감염되면 가볍게는 발열과 근육통, 기침 등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폰티악열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면역력이 약한 고령자나 만성질환자, 흡연자의 경우 폐렴으로 진행하는 레지오넬라증으로 악화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레지오넬라증은 보통 감염 후 2일에서 10일 사이에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열과 함께 심한 기침, 호흡곤란, 근육통, 두통 등이 동반되며 증상이 빠르게 심해질 수 있어 폐렴 증상이 의심되면 지체하지 말고 의료기관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온수기나 보일러를 다시 켤 때는 처음 흘러나오는 물을 곧바로 사용하지 말고 충분히 흘려보내라고 권한다. 샤워기 헤드를 떼어내고 수도꼭지와 샤워기 헤드에 쌓인 물때나 침전물을 미리 닦아내는 것도 세균 번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처음 나오는 물은 충분히 흘려보내는 것이 좋다 [그림=메디닉스DB]
온수기 설정 온도를 섭씨 60도 이상으로 올려 한 차례 가동한 뒤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고온의 물에 화상을 입지 않도록 노약자나 어린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온도 조절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
가정용 설비뿐 아니라 대형 건물의 냉각탑이나 공동주택의 저수조, 찜질방이나 목욕탕의 순환식 욕조 등도 레지오넬라균이 번식하기 쉬운 장소로 꼽힌다. 건물 관리 주체는 환절기를 앞두고 저수조와 배관을 점검하고 소독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국 레지오넬라균 감염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온수 설비를 오래 방치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가동하며, 재가동 초기에는 물을 충분히 흘려보내는 생활 습관이다. 샤워 중 고열이나 기침, 호흡곤란 등 폐렴 의심 증상이 나타나면 레지오넬라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빠르게 병원을 찾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