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해 걷기를 시작한 사람에게 하루 1만 보는 익숙한 목표다. 스마트폰에 찍힌 걸음 수가 목표에 못 미치면 운동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걷기의 건강 효과를 하나의 숫자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얼마나 걷는지와 함께 어떤 강도로 걷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호주 모나시대와 시드니대 연구팀은 지난 9월 9일 국제학술지 ‘영국 스포츠의학 저널’에 걸음 수와 보행 강도를 함께 분석한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에는 영국 바이오뱅크에 등록된 중년 성인 6만4743명의 자료가 활용됐다. 참여자들은 2013~2015년 사이 연속 7일 동안 활동 측정기를 착용했으며, 연구팀은 이후 평균 약 8년간 사망 여부를 추적했다.
분석에서는 하루 걸음 수가 5000보 미만이어도 보행 강도가 높은 경우 낮은 사망 위험과 연관성이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걷더라도 하루 5000~7500보를 걷는 경우 역시 낮은 위험과 관련됐다. 모든 사람이 같은 속도와 걸음 수를 따라야 한다기보다, 자신의 여건에 맞춰 활동량과 강도를 조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시간이 부족한 사람과 빠르게 걷기 어려운 사람에게 서로 다른 실천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다만 이번 연구는 관찰연구다. 걷는 양이나 강도가 사망 위험을 직접 낮췄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활동 측정 기간이 일주일이어서 이후 수년간의 생활 변화를 모두 반영하기도 어렵다. 결과를 ‘5000보만 걸으면 충분하다’거나 ‘빠르게 걸으면 오래 산다’는 공식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걷기 목표를 유연하게 설정할 근거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하다.
생활 속에서는 현재 활동량부터 확인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평소 거의 걷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1만 보를 채우려 하면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출퇴근 동선에서 걸을 구간을 조금 늘리거나 점심시간에 짧은 산책을 넣는 식으로 반복 가능한 기회를 만드는 접근이 현실적이다. 하루 목표를 놓쳤다는 이유로 걷기를 포기하기보다, 평소보다 몸을 움직인 시간을 꾸준히 쌓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다.
빠르게 걷기를 시도할 때도 남의 속도를 기준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같은 속도가 어떤 사람에게는 가벼운 활동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상당한 운동이 될 수 있다. 연구진은 호흡이 평소보다 빨라지고 몸이 따뜻해지면서도 짧은 문장으로 대화할 수 있는 정도를 실용적인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무리하게 속도를 올리는 것보다 자신의 체력에 맞는 강도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걸음 수만으로 운동 전체를 평가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자전거 타기나 수영처럼 걸음 수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활동이 있고, 근력 운동은 걷기와 다른 역할을 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성인에게 주당 150~300분의 중강도 유산소 활동 또는 이에 상응하는 고강도 활동을 권고한다. 주요 근육을 사용하는 근력 운동도 주 2일 이상 함께 하도록 권장한다. 만 보를 채웠는지뿐 아니라 일주일 동안 어떤 활동을 했는지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가령 평일에 빠르게 걷는 시간을 나눠 확보하고, 별도의 날에 근력 운동을 더하는 방식으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반대로 보행 속도를 높이기 어렵다면 편안한 속도로 움직이는 기회를 늘리는 쪽이 실천하기 쉽다. 구체적인 시간과 양은 개인의 건강 상태와 운동 경험에 따라 조정해야 한다. 걷기의 목표는 기록 화면의 숫자를 완성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늘도 실행할 수 있고 다음 주에도 이어갈 수 있는 활동 습관을 만드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