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다녀온 반려견의 잇몸이나 코에서 피가 비치는 모습을 봤다면 단순한 외상보다 진드기 매개 감염병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가을철 반려동물 감염병으로는 바베시아증이나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이 잘 알려져 있지만, 에를리히증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질환이면서도 출혈 증상이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 전문가들은 코피나 잇몸 출혈이 반복될 경우 정확한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고한다.
에를리히증은 진드기를 매개로 전파되는 세균성 질환으로, 주로 작은갈색개진드기가 옮기는 에를리히아속 세균이 혈액 속 백혈구에 침투해 발생한다. 이 세균은 반려견의 면역세포 안에서 증식하면서 혈소판을 비롯한 혈액 성분을 파괴해 다양한 전신 증상을 일으킨다. 국내에서도 산과 들판을 산책하는 반려견을 중심으로 감염 사례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바베시아증이 적혈구를 파괴해 빈혈과 황달 증상을 주로 일으키고, SFTS가 사람에게도 옮을 수 있는 인수공통감염병으로 고열과 소화기 증상을 동반하는 것과 달리, 에를리히증은 혈소판 감소로 인한 출혈 경향이 상대적으로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세 질환 모두 진드기가 매개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임상 양상은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에를리히증에 감염된 반려견은 발열과 식욕부진, 무기력 같은 비특이적인 증상을 먼저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후 혈소판 수치가 떨어지면서 코피, 잇몸 출혈, 피부 아래 작은 출혈반, 멍이 잘 드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눈의 결막이나 소변에서도 미세한 출혈 흔적이 관찰되기도 하며, 심한 경우 관절이 붓거나 다리를 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코피 잦으면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 [그림=메디닉스DB]
급성기를 지나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무증상 보균 상태를 거쳐 만성 단계로 진행할 수 있다는 점도 에를리히증의 특징 중 하나다. 만성 단계에서는 골수 기능이 저하돼 혈소판과 적혈구, 백혈구가 모두 줄어드는 범혈구감소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조기 발견과 치료가 특히 중요하다. 증상이 일시적으로 호전됐다가 수개월 뒤 다시 악화하는 경우도 있어 방심하기 쉽다.
에를리히증을 옮기는 진드기는 기온이 완전히 떨어지기 전인 늦여름부터 가을까지 활동성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어, 산책로 주변의 풀숲이나 낙엽이 쌓인 구역을 지날 때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반려견이 풀밭에 오래 머물거나 몸을 비비는 습관이 있다면 진드기가 붙어 있는지 산책 직후 꼼꼼히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의심 증상이 있으면 동물병원에서 혈액 검사와 항체·유전자 검사를 통해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확진되면 독시사이클린 계열 항생제를 일정 기간 투여하는 치료가 이루어지며, 초기에 발견해 치료를 시작하면 대부분 예후가 양호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자의로 약을 중단하면 재발하거나 만성화할 위험이 있어 수의사의 지시에 따라 처방 기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산책 후 진드기 확인이 예방의 첫걸음 [그림=메디닉스DB]
예방을 위해서는 진드기 기피 효과가 있는 반려동물용 구충제를 정기적으로 사용하고, 산책 후에는 목과 귀 주변, 다리 사이처럼 진드기가 붙기 쉬운 부위를 손으로 직접 쓸어보며 확인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사람에게 직접 전염되는 질환은 아니지만, 진드기 한 마리가 여러 병원체를 동시에 옮길 수 있는 만큼 가족 구성원도 함께 진드기 노출을 줄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려견에게서 코피나 잇몸 출혈이 하루 이상 반복되거나, 평소보다 멍이 쉽게 들고 기력이 떨어지는 모습이 함께 나타난다면 지체하지 말고 동물병원을 찾아 혈액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안전하다. 최근 풀숲을 다녀왔거나 진드기에 물린 흔적이 있다면 진료 시 이를 수의사에게 꼭 알리는 것이 정확한 진단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