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스마트폰에 찍힌 걸음 수가 목표에 못 미치면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 쉽다. 하루 1만 보는 익숙한 건강관리 기준이지만, 모든 사람이 반드시 채워야 하는 절대적인 숫자는 아니다. 최근 발표된 연구는 걷기의 건강 효과를 살필 때 하루 동안 얼마나 걸었는지와 함께 어느 정도의 강도로 걸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제학술지 ‘영국스포츠의학저널’에 올해 9월 공개된 연구에서 연구진은 영국 바이오뱅크 참여자 6만4743명의 활동 측정 자료와 사망 자료를 분석했다. 참여자의 평균 연령은 61.5세였다. 하루 걸음 수를 여러 구간으로 나누고, 보행 강도와 전체 사망 및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의 관계를 함께 살폈다.
분석에서는 하루 5000보 미만을 걷더라도 보행 강도가 높은 경우, 적게 걸으면서 강도도 낮은 기준 집단보다 전체 사망 위험이 낮게 나타났다. 하루 5000~7500보를 걷는 집단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보행 강도에서도 유리한 연관성이 확인됐다. 많이 걷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걸음의 강도가, 속도를 높이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활동량을 늘리는 방식이 건강관리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연구에서 사용한 보행 강도는 산책 중 한순간의 속도가 아니다. 하루 중 분당 걸음 수가 가장 높은 30분을 골라 평균을 낸 지표로, 해당 시간이 연속될 필요도 없다. 따라서 결과에 등장하는 특정 걸음 수를 모든 사람의 운동 처방으로 받아들이거나, 반드시 그 속도로 30분을 쉬지 않고 걸어야 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번 결과는 관찰연구에서 확인된 연관성이다. 걷는 속도를 높이면 사망 위험이 반드시 낮아진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한 것은 아니다. 원래 건강 상태가 좋은 사람이 더 빠르게 걸었을 가능성 등도 고려해야 한다. 영국의 중장년층이 중심인 연구 결과를 연령과 건강 상태가 다른 모든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생활 속에서는 무리한 숫자 경쟁보다 자신의 현재 활동량을 파악하는 일이 먼저다. 출퇴근과 장보기까지 포함해 평소 얼마나 움직이는지 살펴보고, 여유가 있는 구간에 짧은 걷기를 더하는 방식으로 시작할 수 있다. 점심시간에 건물 주변을 걷거나 가까운 거리를 걸어서 이동하는 등 기존 일정에 붙일 수 있는 활동을 선택하면 실천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운동량은 하루 기록만으로 평가할 필요가 없다. 세계보건기구는 성인에게 일주일에 중강도 유산소 활동 150~300분 또는 이에 상응하는 고강도 활동을 권고한다. 주요 근육을 사용하는 근력운동도 주 2일 이상 포함하도록 안내한다. 걷기는 유산소 활동을 늘리는 좋은 방법이지만, 걸음 수만 채웠다고 필요한 운동을 모두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래 앉아 있는 생활도 함께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업무 중 움직일 기회를 만들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일부를 걷는 데 사용하는 방식이 도움이 된다. 평소 활동이 적었다면 처음부터 운동 시간을 크게 늘리기보다 적은 양에서 시작해 점진적으로 늘리는 접근이 권장된다. 만성질환이나 이동의 어려움이 있다면 자신의 상태에 맞는 활동을 의료진과 상의할 수 있다.
이번 연구가 일상에 주는 메시지는 걷기를 하나의 숫자로만 평가하지 말자는 것이다. 오늘 목표를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포기하기보다, 현재 가능한 활동량과 강도를 조합해 꾸준히 움직일 방법을 찾는 편이 현실적이다. 건강을 위한 걷기의 출발점은 다른 사람의 기록이 아니라 자신의 체력과 생활 여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