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해 하루 1만 보를 반드시 걸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지만, 최근 연구들은 걸음 수만큼 걷는 속도도 중요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과 활동량계의 숫자를 확인하며 1만 보를 채우는 데 집착하기보다 자신의 체력에 맞는 속도로 꾸준히 걷는 편이 현실적인 건강관리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 영국 바이오뱅크 자료를 활용한 연구에서는 중년 성인 6만여 명의 보행량과 속도를 분석하고 이후 건강 상태를 추적했다. 분석 결과 걸음 수가 많을수록 조기 사망 위험이 낮아지는 경향이 확인됐으며, 같은 걸음 수를 걷더라도 일정 구간을 조금 더 빠른 속도로 걸은 사람에게서 긍정적인 연관성이 관찰됐다.
특히 하루 1만 보를 채우지 못하는 사람도 빠르게 걷는 시간을 확보하면 건강상 이점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다만 이번 연구는 보행 습관과 건강 결과의 연관성을 관찰한 연구이므로 빠르게 걷는 행동 자체가 사망 위험 감소를 직접 유발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기존 질환과 체력, 식습관, 흡연 여부 등 다양한 변수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걷기의 의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걷기는 별도의 장비나 시설 없이 시작할 수 있고 일상에 적용하기 쉬운 신체활동이다. 규칙적으로 걸으면 심폐 기능과 혈압, 혈당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오래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는 데도 유용하다. 무릎과 허리 등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출퇴근길이나 점심시간, 장보기처럼 이미 반복되는 일정에 걷기를 연결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1만 보를 목표로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평소 하루 3000보 정도 걷는 사람이 갑자기 1만 보를 채우려 하면 발바닥이나 발목, 무릎에 통증이 생길 수 있다. 우선 평소 걸음 수를 확인한 뒤 하루 500보에서 1000보 정도를 추가하고, 몸이 적응하면 서서히 늘리는 편이 안전하다.
걷는 속도는 옆 사람과 짧은 대화는 가능하지만 노래를 부르기는 다소 힘든 정도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처음에는 평소 속도로 걷다가 중간에 5분 정도만 보폭과 속도를 높이고 다시 천천히 걷는 방식을 반복하면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보폭을 지나치게 크게 벌리기보다 등을 자연스럽게 펴고 팔을 가볍게 흔들면서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평소 운동이 부족한 직장인이라면 엘리베이터 대신 일부 층을 계단으로 이동하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가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점심 식사 후 10분 걷기와 퇴근 후 20분 걷기를 나누어 실천해도 된다. 운동 효과를 얻기 위해 반드시 한 번에 오랜 시간을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령자나 심혈관질환자, 호흡기질환자, 관절질환자는 속도를 무리하게 높여서는 안 된다. 걷는 도중 가슴 통증과 심한 호흡곤란, 어지럼증, 식은땀이 나타나면 즉시 중단하고 상태에 따라 진료를 받아야 한다. 무릎이나 발목 통증이 반복된다면 걸음 수를 늘리기 전에 의료진과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건강한 걷기의 핵심은 특정 숫자를 달성하는 데 있지 않다. 오늘의 활동량보다 조금 더 많이 움직이고, 가능한 범위에서 걷는 속도를 높이며, 그 습관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루 1만 보라는 목표가 부담스러워 걷기 자체를 포기하기보다 자신이 지속할 수 있는 걸음 수부터 시작하는 편이 건강에는 더 현실적인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