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이 며칠째 밥을 잘 먹지 않고 축 처져 보인다면, 보호자는 흔히 소화불량이나 스트레스를 먼저 의심한다. 하지만 최근 개봉한 지 오래된 건식사료를 먹여 왔다면 곰팡이독소 오염 가능성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장마철과 환절기처럼 습도가 높은 시기에는 뜯어 놓은 사료 봉지 안에서 곰팡이가 눈에 띄지 않게 번식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곡물성 원료를 많이 사용하는 반려동물 사료는 옥수수, 밀, 쌀 등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아스퍼질러스속 곰팡이에 취약하다. 이 곰팡이가 일정한 온도와 습도 조건에서 증식하면 아플라톡신이라는 독소를 만들어내는데, 이는 눈에 보이는 곰팡이가 없어도 사료 전체에 퍼져 있을 수 있어 육안 확인만으로는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다.
아플라톡신은 간에 직접적인 독성을 나타내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반려동물이 오염된 사료를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식욕 저하, 구토, 무기력 같은 초기 증상부터 황달, 복수, 출혈 경향 등 간 기능 손상을 시사하는 증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 증상이 서서히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보호자가 사료 문제를 뒤늦게 알아차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봉지를 한 번 개봉한 이후부터 시작된다. 밀봉이 풀린 사료는 공기 중의 수분과 접촉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손이나 배식용 컵을 통해 외부 미생물이 유입될 가능성도 커진다. 여름철 고온다습한 환경이나 주방, 베란다처럼 온도 변화가 잦은 장소에 보관하면 봉지 안쪽에 미세한 결로가 생기면서 곰팡이가 자라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진다.

개봉한 봉지는 습기에 취약해 보관에 유의해야 [그림=메디닉스DB]
실제로 개봉한 지 오래된 사료는 알갱이끼리 뭉쳐 있거나 평소와 다른 눅눅한 질감, 쿰쿰한 냄새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런 변화는 사료에 첨가된 지방이 산패되거나 수분을 흡수하면서 나타나는 신호일 수 있으며, 곰팡이 증식이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단서로 볼 수 있다. 사료색이 평소보다 어둡거나 불균일하게 변한 경우도 눈여겨봐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사료를 포함한 축산물 및 반려동물 먹거리에 대해 곰팡이독소 기준을 두고 관리하고 있으며, 유통 단계에서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제조·유통 과정을 통과한 정상 제품이라도 가정에서 보관을 소홀히 하면 아플라톡신이 새로 생성될 수 있어, 관리의 마지막 단계는 결국 보호자의 몫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사료를 안전하게 보관하려면 개봉 후 밀폐 용기에 옮겨 담고 직사광선과 습기를 피해 서늘한 곳에 두는 것이 기본이다. 대용량 제품을 구매했다면 소분해 밀봉 보관하고, 개봉일을 봉지나 용기에 적어두어 일정 기간, 대략 한 달에서 한 달 반 안에 소진하는 것이 권장된다. 구매 시점에는 제조일과 유통기한, 포장 밀봉 상태를 함께 확인하는 습관도 도움이 된다.

밀폐 용기 보관과 빠른 소진이 안전을 지킨다 [그림=메디닉스DB]
사료 상태가 의심스러운데도 반려동물이 이미 섭취한 뒤라면 즉시 급여를 중단하고 남은 사료와 물을 충분히 준비해 동물병원을 찾는 것이 안전하다. 구토나 설사, 식욕 저하가 며칠째 이어지거나 눈이나 잇몸이 노랗게 변하는 황달 증상이 보인다면 간 기능 저하를 의심할 수 있는 만큼 지체하지 말고 진료를 받아야 한다.
곰팡이가 일부 알갱이에서만 보인다고 해서 나머지를 골라 먹여도 된다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아플라톡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퍼져 있을 수 있어 곰팡이가 발견된 사료는 전량 폐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냄새가 이상하거나 봉지 안쪽에 물기가 맺힌 경우에도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안전하다.
결국 반려동물 사료의 곰팡이독소 문제는 특별한 사고보다 평소 보관 습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개봉 즉시 밀폐하고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보관하며 정해진 기간 안에 소진하는 원칙만 지켜도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사료 상태가 조금이라도 의심스럽다면 아깝다는 생각보다 반려동물의 건강을 우선해 새 제품으로 교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