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조회 시간이나 목욕탕처럼 오래 서 있어야 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식은땀이 흐르더니 그대로 주저앉은 경험이 있다면 혈관미주신경성 실신을 의심해볼 수 있다. 전체 실신 환자 중 가장 흔한 원인으로 꼽히는 형태로, 특별한 질환이 없는 사람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
혈관미주신경성 실신은 자율신경 중 하나인 미주신경이 특정 자극에 과도하게 반응하면서 심박수와 혈압이 동시에 떨어지는 현상이다. 혈압이 급격히 낮아지면 뇌로 가는 혈류가 순간적으로 줄어들고, 이로 인해 의식을 잃고 쓰러지게 된다. 대개 몇 초에서 길어야 1~2분 안에 의식이 돌아온다.
이를 유발하는 자극은 다양하다. 무더운 날씨에 장시간 서 있거나 환기가 안 되는 공간에 오래 머무는 경우, 채혈이나 주사처럼 통증이나 공포를 동반하는 의료 상황, 심한 스트레스나 놀라는 상황, 배변이나 기침처럼 배에 힘을 주는 동작 등이 모두 방아쇠가 될 수 있다. 탈수 상태이거나 공복이 길어진 경우에도 발생 빈도가 높아진다.
실신 직전에는 대개 전조 증상이 나타난다. 어지럼증과 함께 눈앞이 하얗게 또는 캄캄하게 변하고 귀에서 이명이 들리며 속이 메스껍고 식은땀이 나는 경우가 많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손발이 차가워지는 것도 흔한 신호다. 이런 조짐을 느꼈을 때 바로 앉거나 눕지 않으면 넘어지면서 다치기 쉽다.

어지럼증과 식은땀은 실신 전 나타나는 대표 신호 [그림=메디닉스DB]
실신 상태에서는 근육에 힘이 빠지면서 몸이 무너지듯 쓰러지고, 짧게는 몇 초 만에 의식이 돌아온다. 의식을 되찾은 직후에는 어지럽고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한동안 이어질 수 있어 곧바로 일어서기보다 몇 분간 누워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 별다른 후유증 없이 회복된다.
젊은 연령층과 여성에게서 상대적으로 자주 보고되지만 나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구조적인 심장질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예후 자체는 양호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쓰러지는 과정에서 머리를 부딪히거나 계단, 욕실처럼 위험한 장소에서 넘어지면 골절이나 열상 등 이차적인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문제는 심장 리듬 이상이나 구조적 심장질환처럼 위험한 원인으로 인한 실신과 구분하는 일이다. 운동 중에 갑자기 쓰러지거나 전조 증상 없이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는 경우, 가슴 두근거림이나 흉통을 동반하는 경우, 가족 중 급사 병력이 있는 경우라면 단순한 혈관미주신경성 실신이 아닐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진단을 위해서는 우선 심전도 등으로 심장 리듬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원인이 불분명하거나 반복적으로 실신이 발생하면 기립경사테이블검사를 통해 자세 변화에 따른 혈압과 심박수 반응을 관찰하기도 한다. 대한신경과학회 등 관련 학회에서는 병력 청취와 신체 진찰만으로도 상당수는 진단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실신 시 다리를 심장보다 높이면 회복에 도움 [그림=메디닉스DB]
주변 사람이 실신 전조 증상을 보이거나 쓰러졌다면 즉시 바닥에 눕히고 다리를 심장보다 높게 들어 올려 뇌로 가는 혈류를 도와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목을 조이는 옷이나 벨트를 느슨하게 풀어주고 주변 공기가 잘 통하도록 해준다. 의식이 바로 돌아오지 않거나 경련, 호흡 이상이 동반되면 즉시 119에 신고해야 한다.
평소 자극을 미리 알아채고 대응하는 습관이 재발 예방에 가장 중요하다. 어지럼증이나 식은땀 같은 전조가 느껴지면 서 있던 자세를 바로 낮추고 앉거나 누워야 한다. 충분한 수분 섭취와 규칙적인 식사로 공복과 탈수를 피하고, 오래 서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다리를 움직이거나 무게중심을 자주 바꿔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염분 섭취나 압박스타킹 착용 등은 증상 빈도에 따라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므로 임의로 시작하기보다 의료진과 상담 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신이 한 달에 여러 차례 반복되거나, 다친 적이 있거나, 가슴 증상을 동반한다면 자가 판단에 그치지 말고 병원을 찾아 정확한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