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예방접종을 거부하거나 미루는 부모를 단순히 과학을 믿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접근이 오히려 의료진과 보호자 사이의 대화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백신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별개로 사람들이 어떤 과정에서 예방접종을 망설이게 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의료전문매체 STAT은 9월 29일 약 20년간 부모들의 백신 의사결정 과정을 연구해 온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덴버 캠퍼스 사회학과 제니퍼 라이히 교수와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라이히 교수는 백신 거부와 의료·복지 정책 속에서 개인과 가족이 선택을 내리는 방식을 연구해 왔으며 2016년에는 부모의 백신 거부를 분석한 저서를 출간했다.
라이히 교수가 장기간 부모들을 면담하면서 확인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상당수가 과학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방식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각 백신의 위험과 이득을 자신이 이해한 방식으로 비교한 뒤 인구집단 전체에서 나타나는 이익보다 자신의 아이에게 직접 어떤 이익이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이런 사고방식이 현대의 육아 환경과도 연결돼 있다고 분석했다. 부모는 임신 준비 단계부터 영양, 운동, 수면, 교육, 생활환경 등 수많은 위험요인을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접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부모는 감염병 위험 역시 생활관리나 개인의 건강상태를 통해 상당 부분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에서의 경험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라이히 교수는 처음부터 예방접종에 부정적이지 않았던 부모 가운데 출산이나 산전관리, 소아과 진료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느끼거나 자신의 질문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느낀 뒤 의료체계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 사례를 접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분석은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을 부정하는 주장과는 구분해야 한다. 라이히 교수 역시 예방접종 자체를 반대하는 연구자가 아니며 자신의 자녀에게 권고 일정에 따라 백신을 접종했다고 밝혔다. 그의 연구 초점은 백신이 효과가 있는지를 다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정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일부 보호자가 왜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지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있다.
의료 현장에서 생각해볼 대목도 있다. 환자나 보호자가 예방접종에 대한 우려를 말했을 때 단순히 잘못된 정보라고 즉시 규정하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걱정하는지 확인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상반응을 걱정하는 것인지, 특정 백신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이전 진료 경험 때문에 의료진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인지에 따라 필요한 설명은 달라진다.
특히 개인의 위험과 집단의 위험을 구분해 설명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한 가족이 경험하는 감염 가능성은 낮아 보일 수 있지만 예방접종에 대한 공중보건 권고는 많은 사람의 감염과 합병증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진다. 반대로 개인별 기저질환이나 과거 이상반응처럼 실제 접종 판단에 영향을 미칠 상황도 있으므로 의료진과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라이히 교수의 인터뷰가 던지는 핵심은 과학적 근거를 약화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근거가 전달되는 과정 역시 의료의 일부라는 데 있다. 예방접종을 둘러싼 신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와 함께 보호자의 질문을 들을 수 있는 진료환경과 충분한 설명이 중요하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