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대표 이미지와 본문 그림은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제작했습니다. [그림=메디닉스DB]
접종 안내문 앞에서 멈춰 서는 순간
임신 28주차 정기검진을 마치고 나오는 길, 병원 게시판에 붙은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안내문 앞에서 걸음을 멈춥니다. 작년까지는 그냥 지나쳤던 문구인데, 배 속 아이를 생각하면 쉽게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접종 안내문 앞에서 멈춰 서서 고민하는 임신부 [그림=메디닉스DB]
"임신 중인데 독감 예방접종 맞아도 되나요"라는 질문은 이 시기 산모들이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꺼내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진료 현장에서 돌아오는 답은 분명합니다. WHO와 미국 CDC는 임신부를 인플루엔자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매년 접종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언제, 어떤 백신으로 맞을지, 그리고 접종 후 어떤 신호를 눈여겨봐야 하는지는 따로 짚어야 할 부분입니다.
WHO와 미국 CDC는 생후 6개월 이상 거의 모든 사람에게, 특히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매년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을 권장하며 이 백신은 WHO 필수 의약품 목록에 올라 있습니다.[1]
지금 확인해야 할 접종 시기와 절차
인플루엔자 접종은 시기를 맞추는 것이 효과를 가장 크게 좌우합니다. 국내에서는 독감 환자가 12월부터 급격히 늘어나는 경향이 있어, 그 전인 10월에서 11월 사이에 접종을 마치는 것이 권장됩니다. 접종 후 방어 항체가 만들어지는 데는 약 2주가 걸리고, 건강한 성인 기준으로는 70~90%의 예방 효과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질병관리청이 매년 안내하는 접종 일정도 이 기준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임신부가 독감 예방접종을 준비하는 진료실 장면 [그림=메디닉스DB]
임신부도 이 일정을 그대로 적용하면 됩니다. 다만 접종 당일 체온이 38도를 넘거나 급성 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면 접종을 하루 이틀 미루고 증상이 가라앉은 뒤 맞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입니다. 접종 부위는 상완 삼각근이며, 접종 후 15~30분 정도는 병원 내에서 대기하며 급성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임신부에게 유독 더 권장되는 이유
임신 중에는 커진 자궁이 폐와 심장을 밀어 올려 호흡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줄어들고, 면역 체계도 태아를 거부하지 않는 방향으로 조절됩니다. 이 변화 때문에 같은 독감이라도 임신부는 폐렴으로 진행하거나 입원 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악화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임신부와 태아가 면역력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해부도 [그림=메디닉스DB]
특히 임신 중기 이후에는 고열 자체가 자궁 수축을 유발해 조기진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접종을 권장하는 배경 중 하나입니다. WHO가 인플루엔자 백신을 필수 의약품 목록에 올려 전 세계 임신부에게 접종을 권고하는 것도 이런 배경과 맞물려 있습니다.
임신 주차에 따라 달라지는 접종 시점
불활성화 인플루엔자 백신은 바이러스를 증식시키지 않기 때문에 임신 1분기, 2분기, 3분기 중 어느 시점에 맞아도 태아에게 전달될 위험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임신 초기 입덧이나 유산 불안이 겹쳐 있을 때는 접종을 2분기 이후로 늦추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신 주차에 따라 달라지는 몸 변화를 보여주는 3단계 과정 [그림=메디닉스DB]
이런 경우라면 독감 유행이 본격화되는 12월과 분만 예정일을 함께 고려해 접종 시점을 정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분만 예정일이 1월 이후라면 11월 초까지는 접종을 끝내 두는 쪽이 안전합니다.
백신 종류별 차이, 무엇을 고르면 되나
국내에서 접종되는 인플루엔자 백신은 제조 방식에 따라 나뉩니다. 2024~2025절기 국내 접종자 자료를 보면 표준 4가 계란배양 백신과 세포배양 백신이 접종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고용량이나 면역증강 백신은 국가예방접종사업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접종 사례가 아예 없었습니다.

서로 다른 종류의 백신과 주사기를 나란히 놓은 정물 [그림=메디닉스DB]
2024~2025절기 국내 인플루엔자 백신 접종자 가운데 59.1%는 표준 4가 계란배양 백신을, 40.9%는 세포배양 백신을 접종받았으며 고용량·면역증강 백신 접종자는 없었습니다.[2]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임신부라면 세포배양 백신 쪽이 더 맞고,알레르기 병력이 없다면 두 백신의 효과 차이가 크지 않아 접종 가능한 쪽을 선택해도 무방합니다. 다만 두 백신 모두 70~90%대의 예방 효과를 전제로 한 수치여서, 접종했다고 독감에 전혀 걸리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임신 중에는 면역반응이 평소와 다르게 나타나 항체 형성이 기대보다 더딘 경우도 있습니다.
열과 숨소리, 이 두 가지는 바로 확인해야 합니다
백신을 맞았다고 해서 독감이나 그로 인한 폐렴을 완전히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임신 중에는 증상이 악화되는 속도가 평소보다 빠르고, 한번 폐렴이나 조기진통으로 넘어가면 되돌리기 어려운 변화로 이어질 수 있어 초기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 해열제 복용 후에도 38.5도 이상 고열이 24시간 넘게 이어지는 경우
- 숨이 가쁘거나 평소보다 숨쉬기 힘든 느낌이 드는 경우
- 태동이 평소보다 눈에 띄게 줄거나 느껴지지 않는 경우
- 가슴 통증이나 심한 기침,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는 경우
- 어지러움이나 의식이 흐려지는 느낌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
이 중에서도 태동 감소와 고열이 함께 나타나는 상황은 특히 서두를 필요가 있습니다. 독감이 폐렴으로 진행되면 산모의 혈중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면서 태반으로 가는 산소 공급도 함께 줄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료실에서는 열이 떨어졌다고 안심하고 하루 이틀 더 버티다가, 숨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고서야 병원을 찾는 임신부를 적지 않게 마주합니다. 증상이 시작된 날로부터 치료 시작이 늦어질수록 입원 기간이나 회복 속도에 차이가 난다는 점은 접종 여부와 별개로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