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회사 다니고 나서 제일 빡치는 거 뭔지 알아요? 하루 종일 사람한테 치이고 퇴근하면 내 얼굴이 내 얼굴이 아님 ㅋㅋ 그래서 작년에 진짜 홧김에 대구에서 제주 혼자 갔거든요. 항공권이랑 숙소랑 렌트까지 끊고 나니까 통장 보고 순간 멍했어요. 와 미쳤나 싶었지. 사회초년생 월급에서 그 돈이 쉬운 돈도 아니고, 카드값 문자 올 때마다 괜히 손 떨림ㅠㅠ
근데 나 솔직히 그때 안 갔으면 더 크게 터졌을 듯. 회사에서 팀장 눈치 보면서 점심도 체하고, 집 와도 머리에서 일 생각 안 빠지고, 주말엔 그냥 누워서 화만 쌓였거든요. 그러다 여행 가서 첫날 바다 딱 봤는데 그때 좀 살겠더라. 사진 찍겠다고 괜히 일찍 일어나서 해 뜨는 거 보러 가고, 바람 때문에 머리 다 날리고 얼굴 퉁퉁 부은 상태로 셀카도 찍었는데 그 사진들 지금 봐도 너무 좋음. 예쁘게 나와서가 아니라 내가 진짜 살아 있었던 얼굴이라
특히 숙소에 돈 좀 쓴 거, 그건 아직도 잘했다 싶어요. 주변에서 잠만 자는데 무슨 돈을 그렇게 쓰냐고 했는데 아니요, 잠만 자는 거 아니던데요? 회사 끝나고 집 오면 침대에 쓰러지는 인간한테 여행 숙소는 거의 반이더만. 뷰 좋은 데 잡아놨더니 저녁에 편의점 맥주 하나 사 와서 창문 열어놓고 멍때리는 그 시간이 제일 아까웠던 마음을 다 눌러줬음. 싼 데 갔으면 사진도 기억도 다 흐렸을 듯
웃긴 건 다녀오고 나서도 현실은 똑같았어요. 출근은 해야지, 메일은 쌓여 있지. 근데 그 여행 이후로 버티는 모양이 좀 달라졌달까. 적어도 내가 돈만 벌다 끝나는 사람은 아니구나 싶었음. 그때 찍은 사진 아직도 가끔 보는데, 아 이 돈은 허세값이 아니라 내가 안 무너지려고 쓴 돈이었구나 싶어요. 그래서 누가 여행에 돈 쓰는 거 아깝다 하면 난 진짜 공감 못 함. 맨날 참고 사는 사람일수록 그런 데는 써야 돼요. 안 그러면 화가 몸에 박힘 진짜로 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