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고 나서는 시간이 좀 느긋하게 흐르니까, 예전엔 그냥 지나치던 것들을 자꾸 보게 되더라고요. 집이 경기 쪽이라 큰 산은 아니어도 동네 하천길이나 공원 쪽으로 슬슬 걷기 좋거든요. 한 달 전부터는 아예 마음먹고 아침 산책 나갈 때마다 사진을 몇 장씩 찍어봤습니다. 거창하게 장비 챙긴 건 아니고 그냥 휴대폰으로요. 사진·여행 갤러리 분들은 웃으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것도 나름 작은 취미가 됐네요.

처음에는 뭐가 예쁜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꽃은 꽃대로 찍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찍고 보면 그냥 지나가며 본 것만 못한 느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일주일쯤 지나니까 제가 자꾸 비슷한 장면을 찍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순간, 카페 유리창에 비친 골목, 비 온 다음 물기 남은 벤치 같은 거요. 여행 사진처럼 멋진 풍경은 아니어도, 제 생활 반경 안에서 계절이 조금씩 움직이는 게 보이니까 그게 꽤 재밌었습니다.

좋았던 점은 산책이 덜 심심해졌다는 겁니다. 그냥 걷기만 하면 어떤 날은 발만 움직이고 생각은 딴 데 가 있는데, 사진 한 장 찍어보겠다고 둘러보면 걸음도 천천히 가고 마음도 좀 차분해지더라고요. 대신 단점도 있었습니다. 괜히 남들 찍는 구도 따라 해보겠다고 휴대폰만 들여다보면 정작 바람 부는 느낌이나 새소리는 놓치게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요즘 한 가지씩만 찍고 오래 안 붙잡으려고 합니다. 많이 찍는 것보다, 오늘 내가 왜 이 장면에 멈췄는지 그게 더 남는 것 같아요.

한 달 해보니 대단한 취미까지는 아니어도, 아침 시간이 조금 더 좋아졌습니다. 예전엔 카페 가서 커피 마시는 걸로 끝났다면, 요즘은 산책하다 한두 장 찍고 카페 들어가서 다시 보면 그게 또 소소한 재미예요. 여기 계신 분들은 사진 찍을 때 일부러 주제를 정해두시는 편인가요? 저는 너무 이것저것 찍으니 오히려 정리가 안 돼서요. 초보가 한 달 해보고 느낀 건, 멀리 안 가도 찍을 건 생각보다 많다는 거였습니다. 괜히 늦게 시작했나 싶다가도, 지금이라도 재밌으면 됐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