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두통 심한 날은 진짜 칼질 소리도 싫고 배달 앱 화면 밝은 것도 눈 아파서 못 보겠더라구요. 그래서 지난달엔 거의 오기로 냄비 하나 붙잡고 계란죽만 계속 끓여먹었어요. 처음엔 너무 처량한가 싶었는데, 막상 머리 깨질 것 같은 날엔 그게 제일 낫더라구요. 쌀 한줌 불려놓고 물 넉넉하게 잡고, 소금 아주 조금에 계란 풀어서 휘휘. 냄새도 세지 않고 위에 부담도 덜해서 그거 말곤 손이 안 갔어요.
웃긴 건 처음 3일은 내가 환자식 먹는 사람 된 거 같아서 좀 서러웠음 ㅋㅋ 남편은 옆에서 라면 끓여먹는데 그 냄새 올라오면 부럽고 짜증나고 둘 다 와서 괜히 더 예민해지고요. 근데 또 라면 한입 잘못 먹으면 그날 밤까지 속 울렁거리고 머리 지끈거려서 결국 다시 죽으로 돌아옴... 진짜 선택지가 없는 느낌? 그게 좀 답답했어요.
그래도 한 달쯤 해보니까 미묘하게 노하우는 생기더라구요. 참기름 넣으면 향이 세서 오히려 머리 아픈 날이 있었고, 김가루도 날마다 올리면 짠맛이 확 올라와서 별로였어요. 제일 괜찮았던 건 다진 애호박 조금 넣는 거. 씹는 맛 아주 약간 생기니까 내가 뭘 먹긴 먹는구나 싶고, 색도 덜 우울해 보여서요. 별거 아닌데 그런 게 은근 크더라구요.
문제는 사람이 이렇게 단순한 맛만 계속 먹으면 입이 먼저 질리는 게 아니라 기분이 질리더라... 밥시간이 기다려지는 게 아니라 또 이거네 싶어서 한숨부터 나옴. 근데 또 몸 컨디션 생각하면 괜히 다른 거 시도했다가 하루 망치는 게 더 무서워서 못 벗어나겠는 거예요. 맛집 게시판에 이런 글 쓰는 것도 좀 웃기긴 한데, 지난 한 달 제일 많이 먹은 음식이 이거라서 ㅠㅠ 저한텐 거의 생존 메뉴였어요.
어제는 두통 좀 덜해서 죽 끓이다가 후추 한 톡 넣어봤는데, 그거 하나로 갑자기 음식 같더라구요. 거창한 레시피 이런 건 아니고 그냥 아프면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는 맛? 질린다 질린다 하면서도 냄비 바닥 긁고 있는 거 보면 참... 당분간은 또 먹을 듯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