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약물이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까지 손상시켜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최근 학계에서는 철분을 매개로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죽이는 세포사멸 방식인 페로토시스가 새로운 항암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페로토시스는 세포 안에 철 이온이 과도하게 쌓이면서 지질 성분이 산화돼 세포막이 손상되고 결국 세포가 사멸하는 현상을 말한다. 기존에 알려진 세포 자살 방식인 아폽토시스나 괴사와는 유전자 조절 경로와 형태학적 특징이 달라 별개의 세포사멸 기전으로 분류된다.
암세포는 빠르게 증식하는 과정에서 정상세포보다 철분을 많이 필요로 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철 대사에 의존하는 성질을 역이용해 암세포에 산화적 스트레스를 집중시키면 정상세포 손상을 줄이면서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기존 항암제에 내성이 생긴 암세포 중 일부는 페로토시스를 유도하는 방식에 취약하다는 보고가 나오면서 관련 연구에 속도가 붙고 있다. 항암제 내성은 치료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꼽혀온 만큼, 페로토시스를 활용한 접근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학계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철 대사와 세포사멸 관련 기초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 [그림=메디닉스DB]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페로토시스를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과 대사 경로를 규명하는 기초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세포 내 항산화 방어체계가 무너지는 조건을 찾아내면 이를 표적으로 하는 물질을 개발해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하는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페로토시스 관련 치료법이 실제 환자에게 적용되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정상 조직에서도 철 대사와 지질 산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암세포만 정밀하게 표적하는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부작용 위험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대한암학회 등 관련 학회에서도 페로토시스가 항암 치료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임상 적용을 서두르기보다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충분히 검증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직은 세포 실험과 동물 실험 단계의 연구가 주를 이루는 상황이다.

임상 적용 전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 [그림=메디닉스DB]
전문가들은 페로토시스 연구가 암 치료뿐 아니라 신경퇴행성질환이나 허혈성 손상 등 철 대사 이상과 관련된 다른 질환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세포사멸 기전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면 다양한 질환의 치료 전략을 세우는 데 폭넓게 활용될 여지가 있다.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는 아직 연구 단계에 있는 개념이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페로토시스를 표방한 검증되지 않은 건강기능식품이나 민간요법에 현혹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치료 방향에 대한 궁금증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담해 정확한 정보를 얻는 것이 바람직하다.
철분 섭취와 항산화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건강관리법이다. 균형 잡힌 식습관을 유지하고 임의로 철분 보충제를 과다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암 진단이나 치료와 관련해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는 자가 판단보다 전문의와의 상담을 우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