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도 정작 장기를 받지 못한 채 상태가 나빠지는 환자들이 적지 않다. 이식 가능한 장기는 적출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능을 잃기 때문에 보존 가능한 시간이 짧을수록 이식 기회도 줄어든다. 최근에는 장기를 저온에서 얼려 보존 기간을 늘리는 저온보존 기술 연구가 이식 대기 문제를 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 수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기증되는 장기 수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적출된 장기 중 상당수가 보존 시간의 제약으로 필요한 곳까지 운반되지 못하고 이식에 쓰이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보존 기술의 한계가 곧 이식 기회의 손실로 이어지는 셈이다.
현재 임상에서 쓰이는 방식은 대부분 저온 냉장보존으로, 장기를 얼음 온도에 가깝게 낮춰 대사 활동을 늦추는 방법이다. 이 방식은 장기 종류에 따라 몇 시간에서 하루 이내로 보존 시간이 제한돼 있어 장거리 이송이나 수혜자와의 조직적합성 검사 등에 시간을 충분히 쓰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것이 영하의 저온에서 장기를 얼려 장기간 보관하는 저온보존 기술이다. 단순히 온도를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세포와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얼리고 다시 녹이는 과정 전반을 다루는 것이 핵심이다.

장기 저온보존을 위한 실험이 진행되는 모습 [그림=메디닉스DB]
장기를 얼릴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조직 내부에서 생기는 얼음 결정이다. 물이 얼면서 생기는 결정이 세포막과 혈관 구조를 손상시켜 해동 후 장기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은 얼음 결정이 거의 생기지 않도록 하는 유리화 방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유리화는 특수한 보호 용액을 장기 조직에 스며들게 한 뒤 매우 빠르게 온도를 낮춰 물 분자가 얼음 결정 대신 유리질 상태로 굳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론적으로는 조직 손상을 크게 줄여 장기를 더 오랜 기간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해동 과정에서 균열이 생기거나 보호 용액 자체가 독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과제로 남아 있다.
국내외 이식 관련 학회와 연구기관에서는 신장, 간 등 일부 장기를 대상으로 저온보존 기술의 안전성과 효과를 확인하는 동물실험 단계의 연구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사람에게 바로 적용하기보다는 보존 기간을 늘리면서도 장기 기능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기초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저온보존 기술이 발전하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적지 않다. 장기를 며칠 또는 그 이상 보관할 수 있게 되면 기증자와 수혜자의 거리에 상관없이 이식이 가능해지고, 조직적합성 검사나 수술 일정 조율에도 여유가 생긴다. 이는 곧 지금보다 많은 환자가 적절한 시점에 이식을 받을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보존 기간이 늘면 장기 운반 여건도 달라질 전망 [그림=메디닉스DB]
다만 전문가들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이식학회 등 관련 학회에서는 저온보존 후 해동한 장기의 장기적인 기능 유지 여부와 이식 후 거부반응 등 안전성 검증이 충분히 이뤄져야 실제 임상 적용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반 시민이 지금 당장 저온보존 기술의 혜택을 체감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연구는 장기적으로 장기이식 대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기초 작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관련 연구 동향은 질병관리청과 관련 학회 등을 통해 꾸준히 발표되고 있어 관심 있는 이들은 참고할 만하다.
장기이식이 필요한 상황을 앞두고 있거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평소 정기적인 건강검진으로 장기 기능 상태를 확인하고, 담당 의료진과 이식 대기 절차를 미리 상의해 두는 것이 좋다. 아울러 장기기증 희망 등록에 동참하는 것도 대기 중인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