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후보물질이 사람에게 안전한지 확인하는 첫 관문은 오랫동안 동물실험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람의 세포를 손톱만 한 칩 위에 배양해 장기의 기능을 재현하는 장기칩 기술이 신약 개발 현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동물실험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일부 단계에서 보완 또는 대안 수단으로 활용 범위를 넓혀가는 추세다.
장기칩은 미세유체 기술을 이용해 만든 반도체 크기의 칩 안에 사람의 간, 심장, 폐, 신장 등 특정 장기의 세포를 배양하고, 실제 인체 내 혈류나 물리적 자극과 비슷한 환경을 인공적으로 조성한 장치다. 세포에 약물을 흘려보내면 실제 장기가 반응하는 방식과 유사한 반응을 관찰할 수 있어 약물의 흡수와 대사, 독성 여부를 가늠하는 데 활용된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 오가노이드온칩이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든 미니 장기 유사체로, 실제 장기의 구조와 기능을 입체적으로 흉내 낸다. 이 오가노이드를 장기칩과 결합하면 세포 간 상호작용과 조직 단위의 반응까지 관찰할 수 있어 평면 세포 배양보다 정교한 실험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물대체시험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동물실험의 한계에 대한 오랜 문제 제기가 자리한다. 동물과 사람은 약물에 반응하는 방식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아, 동물실험에서 안전성이 확인된 후보물질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보이며 개발이 중단되는 사례가 꾸준히 보고돼 왔다. 동물 윤리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진 점도 대체시험 연구를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세포 기반 장기칩으로 약물 반응을 관찰하는 실험 장면 [그림=메디닉스DB]
미국 식품의약국은 최근 신약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반드시 거치지 않아도 되도록 관련 규정을 완화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가노이드온칩을 비롯한 세포 기반 대체시험 결과를 신약 승인 심사 자료로 인정하는 범위를 넓히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중심으로 동물대체시험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연구 현장에서는 간 독성을 평가하는 간 오가노이드칩, 심장 부정맥 위험을 살피는 심장칩, 약물이 폐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는 폐칩 등 장기별로 특화된 모델이 개발되고 있다. 여러 장기칩을 연결해 약물이 한 장기에서 대사된 뒤 다른 장기에 미치는 영향까지 통합적으로 살피려는 다중장기칩 연구도 병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기술은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 효능과 독성이 낮은 후보물질을 미리 걸러내는 용도로 활용된다. 개발 초기에 문제가 있는 물질을 가려낼 수 있다면 이후 동물실험이나 임상시험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와 비용, 시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아직까지 장기칩만으로 사람 몸 전체의 복잡한 반응을 완전히 재현하기는 어렵다는 한계도 함께 지적된다.
국내 대학과 연구기관에서도 오가노이드온칩 관련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관련 학회에서는 표준화된 실험 프로토콜을 마련하고 신뢰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을 확립하는 작업이 향후 이 기술의 확산에 중요한 과제라는 의견이 나온다. 실험실마다 다른 세포 배양 조건과 재현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으로 꼽힌다.

오가노이드온칩 실험을 함께 진행하는 연구진 [그림=메디닉스DB]
업계에서는 장기칩과 오가노이드온칩을 활용한 신약 개발 시장이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이 기술이 당장 동물실험을 전면 대체하기보다는,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 후보물질을 효율적으로 선별하는 보조 수단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규제기관의 승인 기준이 구체화되는 속도에 따라 실제 활용 범위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일반 소비자나 환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기술 변화가 당장 체감되기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신약 개발 기간 단축과 부작용 위험이 낮은 약물의 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임상시험에 참여하거나 신약 정보를 접할 때는 해당 약물이 어떤 단계의 시험을 거쳤는지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새로운 약물 정보를 접했을 때는 식품의약품안전처나 관련 학회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이 제공하는 자료를 통해 임상시험 단계와 허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인이 임의로 약효나 안전성을 판단하기보다는 의료진과 상담을 거쳐 신약이나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