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종류의 백신을 접종받아도 누구는 항체가 충분히 만들어지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이런 개인차를 두고 그동안 나이나 기저질환, 영양 상태가 주로 거론됐지만 최근에는 장 속에 사는 세균들의 구성, 즉 장내세균총이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장내세균총은 소화나 배변 활동에만 관여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면역세포의 발달과 활성에도 깊이 관여한다. 관련 연구자들에 따르면 장 점막에는 몸 전체 면역세포의 상당 부분이 모여 있어 장내 미생물의 상태가 전신 면역 반응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특히 장내세균의 다양성이 낮거나 특정 유해균이 우세한 경우 백신 접종 후 형성되는 항체의 양이나 지속 기간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는 경향이 관찰됐다는 보고가 있다. 반대로 다양한 균종이 균형 있게 존재하는 장 환경에서는 면역 반응이 비교적 활발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로는 장내세균이 만들어내는 대사산물이 거론된다. 식이섬유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단쇄지방산 같은 물질은 면역세포를 조절하는 신호로 작용할 수 있으며, 이 물질의 농도가 백신에 대한 반응성과 연관이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장내세균 다양성이 면역반응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림=메디닉스DB]
영유아나 고령층에서 백신 효과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장내세균 구성이 거론된다. 노화나 항생제 사용, 식습관 변화 등으로 장내 미생물 균형이 흐트러지면 면역계가 새로운 항원에 충분히 반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장내세균과 백신 반응의 관계가 아직 완전히 규명된 단계는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개인의 유전적 특성, 기저질환, 영양 상태 등 다른 요인들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장내세균만으로 백신 효과를 예측하기는 이르다는 신중한 입장이 많다.
그럼에도 이 분야는 향후 백신 접종 전략을 세울 때 참고할 수 있는 새로운 실마리로 주목받는다. 대한감염학회 등 관련 학계에서는 장내 미생물 상태를 고려한 맞춤형 접종 시기나 보조 전략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장내세균 다양성 유지에 도움되는 식습관이 강조된다 [그림=메디닉스DB]
일반인이 당장 장내세균 검사를 통해 백신 효과를 예측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평소 장 건강을 관리하는 생활 습관은 면역 기능 전반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꾸준히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와 통곡물, 발효식품을 고르게 섭취하는 식습관은 장내세균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불필요한 항생제 남용이나 지나친 가공식품 섭취는 장내 미생물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불규칙한 수면이나 만성 스트레스 역시 장내 미생물 균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유지하고 적절한 운동을 병행하는 것도 장 건강과 면역력을 함께 챙기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
백신 접종을 앞두고 있다면 평소 식습관과 수면, 스트레스 관리를 통해 몸의 전반적인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접종 후 항체 형성이 잘 안 되는 것으로 의심되거나 반복적인 감염이 걱정된다면 가까운 의료기관을 찾아 상담받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