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갑자기 밥을 먹지 않고 축 늘어진 채 구토와 설사를 반복한다면 단순한 소화불량으로 넘기지 말아야 한다. 특히 예방접종을 다 맞지 않은 새끼 고양이라면 고양이범백혈구감소증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이 질환은 치료 시기를 놓치면 짧은 시간 안에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급성 감염병으로 알려져 있다.
범백혈구감소증은 고양이범백혈구감소증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다. 이 바이러스는 강아지에게 흔한 파보바이러스와 같은 파보바이러스과에 속해 있어 이름과 증상이 비슷해 보호자들이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두 바이러스는 서로 다른 종으로, 강아지용 백신이 고양이를 보호해주지 못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 바이러스는 감염된 고양이의 분변, 침, 콧물 등 체액을 통해 배출되며 직접 접촉이 없어도 사람의 손이나 옷, 식기, 사료그릇 등에 묻어 간접적으로 전파될 수 있다. 특히 외부 환경에서 오랜 기간 생존하는 특성이 있어 한 번 감염이 발생한 공간은 철저한 소독 없이는 다른 고양이에게 반복해서 옮길 위험이 남는다.
감염되면 고열과 함께 심한 구토, 혈변이 섞인 설사, 식욕부진이 나타나며 급격한 탈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바이러스가 골수를 공격해 백혈구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이 질환의 특징으로, 면역력이 낮아진 몸은 이차 세균 감염에도 쉽게 노출된다.

감염되면 고열과 설사 등 증상이 빠르게 나타나 [그림=메디닉스DB]
생후 몇 주에서 몇 달 사이의 새끼 고양이, 예방접종을 마치지 못한 고양이, 여러 마리를 함께 키우는 다묘가정이나 유기묘 보호시설의 고양이가 특히 위험군으로 꼽힌다. 어미로부터 받은 면역력이 약해지는 시기에 접종 공백이 생기면 감염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
병원에서는 혈액검사와 항원검사를 통해 백혈구 감소와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해 진단한다. 아직 바이러스를 직접 없애는 치료제는 개발돼 있지 않아 수액을 통한 탈수 교정, 이차 감염을 막기 위한 항생제 투여, 영양 공급 등 대증치료가 중심이 된다. 치료를 받아도 특히 어린 고양이는 치사율이 높은 편으로 알려져 있어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장 확실한 예방법은 예방접종이다. 범백혈구감소증은 고양이 종합백신에 포함돼 있어 생후 6주에서 8주 무렵부터 접종을 시작해 일정 간격으로 추가 접종을 완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후에도 수의사와 상의해 정해진 주기로 추가접종을 이어가야 항체가 꾸준히 유지될 수 있다.
강아지 파보장염과 이름이 비슷해 같은 병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앞서 설명했듯 원인 바이러스가 다르고 접종하는 백신도 별개다. 강아지 파보 백신을 맞혔다고 고양이가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며, 반려동물을 함께 키우는 가정이라면 각 동물 종에 맞는 접종 스케줄을 따로 챙겨야 한다.

정기적인 예방접종이 감염 예방의 핵심 [그림=메디닉스DB]
다묘가정이나 보호소처럼 여러 마리가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라면 새로운 고양이를 들일 때 일정 기간 격리 관찰을 거치고, 발판이나 그릇, 배변용품 등을 개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감염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바이러스는 일반 세제로는 잘 제거되지 않아 소독 시에는 효과가 검증된 소독제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출이 잦은 고양이나 길고양이와 접촉할 기회가 있는 반려묘는 상대적으로 감염 노출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외출 후에는 발과 몸에 이물질이 묻지 않았는지 살피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다른 고양이와의 접촉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감염 예방에 도움이 된다.
고양이가 이틀 이상 밥을 먹지 않으면서 구토나 설사가 계속되거나 평소보다 눈에 띄게 기운이 없다면 지체하지 말고 동물병원을 찾아야 한다. 예방접종 시기를 놓쳤다면 지금이라도 수의사와 상담해 접종 계획을 세우는 것이 반려묘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