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항구에 들어오는 배들이 선원 교체를 이유로 일일이 검역관 승선 검사를 받아야 했던 관행이 바뀐다. 질병관리청은 31일 검역법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해 선박 검역 체계를 감염병 위험도 중심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연간 1만여 척에 이르는 저위험 선박이 한층 빠르게 입항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그동안 승선검역 대상 선박 가운데 절반이 넘는 57.6퍼센트가 감염병 발생과 무관한 단순 선원교대 목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병 위험이 없는데도 관행적으로 배에 올라 확인 절차를 거치다 보니 선박 운항과 물류 일정에 불필요한 지연이 발생해 왔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으로 단순 선원교대만을 이유로 한 일괄 승선검역은 폐지된다. 질병관리청은 미국, 일본 등 주요국이 이미 적용하고 있는 위험도 기반 검역 방식에 맞춰 국내 제도를 정비했다고 설명했다. 오랜 관행으로 굳어져 있던 일률적 승선검역 방식을 실제 감염병 위험 여부에 따라 구분해 적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셈이다.
선박 검역은 해외에서 유입될 수 있는 감염병을 국경 단계에서 차단하는 첫 관문 역할을 한다. 승객이나 화물이 아니라 배 자체와 승선 인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 국내 유입 위험을 사전에 걸러내는 절차다. 이번 개편은 이 기능은 유지하면서 실제 위험이 낮은 선박까지 일일이 붙잡아두지는 않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승선검역 대상 여부는 위험 요인에 따라 나뉜다 [그림=메디닉스DB]
감염병 발생 국가를 경유했거나 승선 중 발열, 설사 등 의심 증상을 보인 선원이 있는 경우처럼 실제 위험 요인이 확인되는 선박은 앞으로도 승선검역 대상에서 빠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이런 요인이 없는 저위험 선박은 서류 검토나 원격 확인 등 간소화한 절차로 입항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된다.
질병관리청은 이번 조치로 연간 1만여 척의 저위험 선박이 신속하게 입항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항만 현장에서는 불필요한 대기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물류 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검역 인력도 실제 위험도가 높은 선박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검역 방식이 바뀐다고 해서 감염병 유입 위험에 대한 감시망이 느슨해지는 것은 아니다. 위험도를 나누는 기준 자체가 감염병 발생 동향과 선원 건강 상태를 근거로 하는 만큼, 오히려 의심 사례가 있는 선박에 대한 검역은 더 촘촘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질병관리청의 설명이다.

저위험 선박은 서류 검토로 절차가 간소화된다 [그림=메디닉스DB]
선원이나 해외 항만을 오가는 근로자라면 이번 제도 변화와 별개로 스스로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습관이 여전히 중요하다. 발열, 기침, 설사 등 감염병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 있다면 승선 전후로 이를 숨기지 말고 선박 관계자나 검역 당국에 알리는 것이 국내 유입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해외를 오가는 일반 여행객 역시 입국 시 검역 절차에 협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감염병 유행 지역을 다녀왔거나 입국 전후 발열, 근육통 등 이상 증상이 나타났다면 검역관에게 반드시 알려야 하며, 증상이 있는데도 신고하지 않고 넘어가면 뒤늦게 지역사회로 감염이 확산될 위험이 있다.
항구를 통해 오가는 선원과 여행객 모두 손씻기, 기침 예절 같은 기본적인 개인위생 수칙을 지키고,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무리해서 넘기기보다 가까운 검역소나 의료기관에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검역 제도가 효율화되는 만큼 그 실효성을 지키는 것은 결국 이용자 개개인의 협조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