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려동물 양육 환경이 본격적인 노령화 단계에 들어섰다. 개와 고양이가 가족과 함께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단순한 수명 연장보다 통증과 불편을 줄이고 건강한 상태로 생활하는 건강수명 관리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리서치와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인문사회학연구실이 국내 반려동물 보호자 2002명을 조사한 결과, 10세 이상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가구는 38.3%로 나타났다. 8세 이상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까지 포함하면 비율은 52.4%로 절반을 넘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동물병원을 찾는 횟수와 의료비 부담도 증가했다. 1세부터 12세까지는 최근 1년간 동물병원 방문 횟수가 평균 4.0∼4.2회였지만 13세 이상에서는 5.4회로 늘었다. 전체 양육비에서 병원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다른 연령대에서는 20%대였으나 13세 이상에서는 30.1%로 높아졌다.
노령 반려동물은 한 가지 질환보다 치주질환과 관절질환, 만성신장질환, 심장질환, 내분비질환 등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러 질환이 동시에 진행되면 한 질환의 치료가 다른 장기 상태에 영향을 줄 수 있어 투약과 식단, 검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개와 고양이는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특성이 있다. 보호자가 뚜렷한 증상을 알아챘을 때는 질환이 상당히 진행됐을 가능성도 있다. 잠자는 시간이 늘거나 움직임이 줄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변화를 자연스러운 노화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산책을 꺼리고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행동은 관절 통증과 관련될 수 있다. 물을 많이 마시고 소변량이 늘어나는 변화는 만성신장질환이나 당뇨병, 부신질환에서 나타날 수 있다. 체중 감소와 반복적인 구토, 심해진 입 냄새, 그루밍 감소, 야간 울음, 배변 실수도 확인해야 할 변화다.
식욕이 유지된다고 건강하다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노령묘의 갑상선기능항진증처럼 음식을 잘 먹으면서 체중이 감소하는 질환도 있고 당뇨병이나 소화기질환에서도 식욕과 체중 변화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체중뿐 아니라 근육량과 활동량, 물 섭취량, 배뇨 상태를 함께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검진 주기는 품종과 체중, 기존 질환에 따라 달라지지만 노령기에 접어들었다면 수의사와 상의해 검진 간격을 조정하는 것이 좋다. 혈액검사만으로 모든 이상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혈압과 소변, 치아, 관절, 심장 상태를 함께 평가해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질환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보호자의 준비도 치료비 마련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미끄럼 방지 매트와 낮은 식기, 쉽게 출입할 수 있는 화장실을 마련하고 높은 곳을 오르내리는 동선에는 안전 발판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 관절이 약한 반려동물을 안을 때는 가슴과 골반을 함께 받쳐 허리 부담을 줄여야 한다.
통증과 식욕, 활동량, 수면, 배변 상태를 매일 간단히 기록하면 진료 과정에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전보다 좋아하는 행동이 줄었는지, 스스로 먹고 움직일 수 있는지, 통증 없이 편안하게 쉬는 날이 얼마나 되는지를 살피는 것도 필요하다. 노령 반려동물 관리의 목표는 오래 살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덜 아프고 편안하게 보내도록 돕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