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으로 즐겨 먹는 아몬드나 호두, 캐슈넛 같은 견과류를 상온에 오래 두었다가 눅눅하거나 씁쓸한 맛을 느낀 적이 있다면 보관법을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견과류는 지방 함량이 높은 식품으로 온도와 습도, 빛에 노출되면 산패가 빠르게 진행되는데, 얼마나 먹느냐보다 어떻게 보관하느냐가 신선도와 맛,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견과류가 쉽게 산패되는 것은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불포화지방산은 산소와 만나면 산화 반응을 일으키기 쉬운데, 이 과정에서 특유의 고소한 향은 사라지고 기름 찌든 냄새나 페인트 냄새 같은 이취가 나타난다. 특히 껍질을 벗기고 잘게 부순 견과류일수록 공기와 닿는 표면적이 넓어져 산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패가 시작된 견과류는 겉모습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봉지를 열었을 때 코를 자극하는 시큼하거나 쿰쿰한 냄새가 난다면 이미 산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로 볼 수 있다. 맛을 보았을 때 혀끝에 씁쓸하거나 알싸한 뒷맛이 남는다면 신선도가 떨어졌다는 신호이므로 남은 견과류는 과감히 버리는 편이 안전하다.
산패된 지방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아직 확립된 정량적 연구가 충분하지 않지만, 산화된 유지 성분이 체내에서 활성산소를 늘리는 데 관여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변질되거나 이취가 나는 식품은 섭취하지 말고 폐기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견과류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특히 소화 기능이 약한 어린이나 노인은 산패된 견과류를 먹었을 때 속쓰림이나 메스꺼움 같은 불편감을 더 쉽게 느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냄새로 산패 여부를 확인하는 모습 [그림=메디닉스DB]
보관 장소는 견과류 신선도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다. 실온, 특히 여름철 주방처럼 온도가 높고 습한 공간에 견과류를 방치하면 산화 속도가 크게 빨라진다. 소량씩 자주 먹을 분량이 아니라면 구입 직후부터 냉장고나 냉동실에 넣어 보관하는 것이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견과류를 오래 두고 먹는 가정이라면 소분해 보관하는 습관이 더욱 중요하다.
밀폐 용기 사용도 빼놓을 수 없는 원칙이다. 견과류를 봉지째 두거나 뚜껑을 헐겁게 닫아두면 공기와 접촉하는 면적이 늘어 산패가 촉진된다. 밀폐가 잘 되는 유리 용기나 지퍼백에 소분해 넣고 되도록 공기를 빼낸 뒤 보관하면 산화를 늦추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구매한 봉지를 그대로 사용하기보다는 밀폐력이 좋은 용기로 옮겨 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빛과 습기를 차단하는 것도 중요한 요령이다. 투명한 용기에 담아 햇볕이 드는 창가나 조리대 위에 두면 자외선이 지방 산화를 재촉할 수 있으므로, 불투명한 용기에 담거나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습기가 많은 장마철에는 실온 보관 자체를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 주방보다 서늘한 팬트리나 냉장고 채소 칸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구입할 때부터 신선도를 염두에 두는 습관도 필요하다. 한 번에 많은 양을 사서 오래 두고 먹기보다는 짧은 기간 안에 소비할 수 있는 소량 단위로 구매하는 편이 산패 위험을 줄인다. 대용량 제품을 구매했다면 개봉 즉시 소분해 냉동 보관하고, 먹을 만큼만 꺼내 실온에 두는 방식이 권장된다.

밀폐용기에 넣어 냉장 보관하는 견과류 [그림=메디닉스DB]
견과류 종류에 따라 보관 기간에도 차이가 있다. 호두나 잣처럼 불포화지방산 비율이 특히 높은 견과류는 아몬드나 땅콩보다 산패 속도가 빠른 편으로 알려져 있어 더욱 서늘하게 보관해야 한다. 껍데기를 까지 않은 견과류는 껍데기가 어느 정도 산화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므로 상대적으로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종류별 특성을 고려해 보관 방식을 조금씩 달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냉동 보관한 견과류는 해동 방법도 신경 써야 한다. 실온에 꺼내둔 채 오래 방치하면 표면에 결로가 생겨 오히려 눅눅해지고 곰팡이가 생길 위험이 있으므로, 먹을 만큼만 꺼내 짧은 시간 안에 자연 해동하거나 바로 조리에 사용하는 것이 좋다. 한 번 해동한 견과류를 다시 얼리는 것은 품질 저하를 앞당길 수 있어 되도록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견과류를 안전하게 즐기려면 구입 시 포장 상태와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개봉 후에는 밀폐 용기에 담아 서늘하고 어두운 곳이나 냉장·냉동실에 보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냄새나 맛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진다면 아깝더라도 먹지 말고 버리는 것이 산패된 지방으로 인한 불편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