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병을 앓아도 어떤 환자는 약이 잘 듣고 어떤 환자는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을 겪는 경우가 있다. 이런 차이의 상당 부분은 개인의 유전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국내외 의료계에서는 환자 개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 가장 적합한 약물과 용량을 찾아내는 정밀의료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획일적으로 같은 약을 처방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 맞춤형 치료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흐름이다.
정밀의료란 환자의 유전정보, 생활습관, 환경적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의료 접근법을 말한다. 기존 의학이 평균적인 환자를 기준으로 표준화된 치료법을 적용했다면, 정밀의료는 개인별 차이에 주목해 치료 효과를 높이고 불필요한 부작용을 줄이는 데 목적을 둔다.
정밀의료의 핵심 도구 중 하나는 약물유전체 검사다. 사람마다 약물을 분해하고 배출하는 효소의 유전자형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용량을 투여해도 혈중 농도와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특정 유전자 변이를 가진 환자는 약물이 체내에서 너무 빨리 분해돼 효과가 떨어지거나, 반대로 느리게 분해돼 부작용 위험이 커지기도 한다.
이 같은 개인차는 항응고제나 항혈소판제 같은 심혈관계 약물, 일부 항암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쓰이는 약물 등 여러 분야에서 확인되고 있다. 대한의학회 산하 여러 학회는 특정 약물을 처방하기 전 유전자 검사를 참고하도록 권고하는 지침을 마련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흐름은 처방 전 부작용을 예측해 안전성을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약물유전체 검사에 쓰이는 혈액 검체 분석 과정 [그림=메디닉스DB]
암 치료 영역에서는 정밀의료가 가장 앞서 적용되고 있는 분야로 꼽힌다. 종양 조직의 유전자 변이를 분석해 특정 표적을 가진 암세포만 공격하는 표적항암제를 선택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런 방식은 불필요한 항암제 투여를 줄이고 치료 반응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유전자 기반 치료 전략을 도입하는 병원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정밀의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검사와 약물 반응을 연결하는 대규모 데이터가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와 관련 연구기관은 국내 환자의 유전체 정보를 축적하고 이를 임상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사업을 추진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데이터베이스가 쌓일수록 예측의 정확도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정밀의료가 모든 환자에게 곧바로 적용되기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유전자 검사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고, 검사 결과를 해석해 처방에 반영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적인 제약이 남아 있다. 또한 유전정보라는 민감한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정밀의료 상담에서 유전자 검사 결과를 논의하는 장면 [그림=메디닉스DB]
해외에서도 정밀의료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등 여러 국가는 대규모 인구 집단의 유전체와 건강 정보를 장기간 추적하는 코호트 연구를 통해 약물 반응과 유전자의 관계를 규명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국제적 연구 성과는 국내 임상 지침을 보완하는 참고 자료로도 활용된다.
전문가들은 정밀의료가 앞으로 만성질환 관리와 예방 영역으로도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당뇨병이나 고혈압처럼 여러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질환에서도 개인별 위험도를 예측하고 맞춤형 생활습관 관리 방안을 제시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런 접근은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반 환자가 당장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약물을 복용한 뒤 효과가 없거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반복적으로 겪는다면 담당 의료진과 상담해볼 필요가 있다. 가족력이 있는 만성질환자나 여러 약물을 함께 복용하는 고령 환자라면 정밀의료 관련 상담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검사를 고려할 때는 신뢰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안내받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