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탁을 준비하며 고기를 구워 먹은 뒤, 썼던 도마를 씻지 않고 그대로 상추나 오이를 써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 순서가 식중독 위험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도마와 칼에 남은 세균이 다음 식재료로 옮겨가는 이른바 교차오염이 숨은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교차오염이란 날고기나 생선에 있던 세균이 조리 과정에서 다른 식재료나 도구로 옮겨가는 현상을 말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살모넬라균이나 캄필로박터균 등은 익히지 않은 육류와 가금류 표면에 흔히 존재할 수 있으며, 도마와 칼을 통해 손쉽게 다른 음식으로 전파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손질 순서와 도구 위생이 식중독 예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문제는 채소나 과일 대부분이 가열 조리 없이 그대로 섭취된다는 점이다. 세균에 오염된 도마로 채소를 썰면 표면에 세균이 묻은 채로 식탁에 오르게 되고, 흐르는 물로 씻는 정도로는 도마 칼자국 사이에 남은 세균까지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오이나 상추, 깻잎처럼 씻어서 바로 먹는 채소는 위험이 더 크다는 지적도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육류와 생선용 도마, 채소와 과일용 도마를 따로 두고 색깔이나 표시로 구분해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도마를 여러 개 마련하기 어려운 가정이라면 손질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채소와 과일을 먼저 썰고, 육류와 생선은 가장 나중에 손질하는 순서가 안전하다. 이 같은 순서만 지켜도 별도의 도마 없이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육류용과 채소용 도마를 따로 쓰는 것이 안전 [그림=메디닉스DB]
도마의 재질도 살펴볼 부분이다. 칼자국이 깊게 팬 도마는 그 틈새에 세균과 유기물이 남아 번식하기 쉬운 환경이 된다. 오래 써서 표면이 거칠어지고 색이 배어든 도마는 세척만으로 위생 상태를 되돌리기 어려우므로 일정 기간 사용 후에는 교체를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정에서는 최소한 육류용과 채소용 두 종류만이라도 구분해 두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세척 방법도 중요하다. 상온의 물과 주방세제만으로 문지르는 것보다 뜨거운 물로 헹구거나 열탕 소독을 병행하면 세균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필요하면 식품용으로 안전하게 희석한 살균 소독제를 사용한 뒤 충분히 헹궈내고, 사용 후에는 완전히 말려 보관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특히 식중독 위험이 큰 여름철에는 이 같은 세척 습관을 더욱 꼼꼼히 지키는 것이 좋다.
냉장고 안에서도 교차오염은 일어날 수 있다. 육류나 생선을 채소보다 위 칸에 두면 육즙이 흘러내려 아래 칸의 채소나 조리된 음식을 오염시킬 수 있다. 육류와 생선은 밀폐 용기에 담아 가장 아래 칸에 보관하고, 채소와 과일은 그보다 위쪽에 두는 것이 안전하다. 특히 김치나 밑반찬처럼 오래 두고 먹는 음식은 오염되면 그 영향이 오래 이어질 수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도마뿐 아니라 손도 교차오염의 통로가 된다. 날고기나 생선을 만진 손으로 바로 채소나 다른 식재료를 만지면 도마를 바꿔도 소용이 없다. 육류와 생선을 손질한 뒤에는 비누로 손을 충분히 씻고, 조리 도구도 함께 세척한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요리 중간중간 손을 씻는 습관만으로도 여러 식재료 사이의 교차오염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육류 손질 후에는 손부터 씻는 습관 필요 [그림=메디닉스DB]
기온이 오르는 계절에는 도마 위에 세균이 늘어나는 속도도 빨라진다. 조리를 마친 도마를 싱크대에 그대로 오래 방치하면 세균이 증식할 시간을 벌어주는 셈이 된다. 사용한 도마는 되도록 바로 세척하고 건조대에 세워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는 편이 안전하다. 특히 무더운 계절에는 조리 후 도마를 오래 방치하지 않는 습관이 더욱 중요해진다.
교차오염으로 인한 식중독은 구토, 설사, 복통, 발열 등 일반적인 식중독 증상으로 나타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특히 어린이와 고령자, 임산부,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서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설사나 구토 증세가 있을 때는 탈수를 막기 위해 물이나 이온음료 등으로 수분을 충분히 보충하는 것이 좋다.
증상이 하루 이상 이어지거나 고열, 혈변, 심한 탈수 증세가 동반된다면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평소에는 도마와 칼을 용도별로 나누고, 채소를 먼저 썬 뒤 육류와 생선을 손질하며, 사용한 도구는 그때그때 씻고 말리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식중독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 같은 습관은 큰 비용이나 시간 부담 없이 식탁 위 위험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