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이 아플 때 보호자가 가장 힘들어하는 순간은 의외로 병명을 처음 듣는 순간이 아니다. 검사 결과를 설명받는 시간도 아니다. 진짜로 마음이 무너지는 때는 동물병원 문을 나서 혼자가 되었을 때다. 진료실 안에서는 보호자는 비교적 담담하다. 수의사의 설명을 듣고 치료 계획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약 봉투를 챙기고 다음 진료 일정을 확인하며 해야 할 일을 차분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불이 꺼진 거실에서 반려동물을 마주하는 순간 억눌렀던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그때부터 보호자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질문이 맴돈다. 내가 뭘 잘못한 건 아닐까, 더 빨리 병원에 왔어야 했던 건 아닐까, 먹이던 간식이나 그날의 산책이 원인이 된 건 아닐까. 반려동물이 아프면 보호자는 원인을 외부보다 자신에게서 먼저 찾는다. 이 질문들은 대부분 죄책감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수의사의 입장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점은, 대부분의 질병은 보호자의 잘못으로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노화, 유전, 체질, 환경, 예측하기 어려운 생리적 변화가 겹쳐 발생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보호자가 아무리 애써도 막을 수 없는 영역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보호자는 반려동물의 고통보다 ‘내가 부족한 보호자였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에 더 괴로워한다. 이 자책은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보호자의 마음과 체력을 빠르게 소모시킨다. 보호자가 지칠수록 반려동물을 돌볼 힘도 함께 줄어든다. 병원에 늦게 왔다고, 초기에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고 자신을 탓하는 보호자도 많지만, 보호자는 전문가가 아니다. 매일 함께 지내다 보면 작은 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무책임이 아니라 일상의 한계에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