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내성이 전 세계적 보건 위기로 부상한 가운데, 흙 속 세균이 자연적으로 만들어내는 항생물질의 ‘중간 단계’에서 기존 약보다 100배 강력한 신형 항생제가 발견됐다. 이번 연구는 기존 항생제의 개량이 아니라, 자연의 진화 과정에서 우연히 생성된 대사 경로의 숨은 산물이 새로운 치료제의 단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연구 결과는 미국화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에 게재됐으며, 영국 워릭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 화학생물학자 그레고리 챌리스(Gregory Challis) 교수 연구팀이 주도했다.
연구팀은 토양 세균 스트렙토마이세스 코엘리컬러(Streptomyces coelicolor)가 생산하는 항생제 메틸레노마이신 A(methylenomycin A)의 합성 경로를 분석하던 중, 중간 단계에서 생성되는 ‘프리메틸레노마이신 C 락톤(premethylenomycin C lactone)’에 주목했다. 놀랍게도 이 물질은 최종 산물보다 항균 효과가 100배 이상 강력했으며, 기존 항생제보다 훨씬 낮은 농도에서도 내성균을 효과적으로 제압했다. 연구팀은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과 장구균(Enterococcus faecium)을 포함한 7종의 그람양성균에 대한 실험에서, 1마이크로그램/밀리리터 농도로도 MRSA를 사멸시킬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는 기존 메틸레노마이신 A의 256분의 1 수준으로, ‘최후의 보루’ 항생제인 반코마이신보다도 낮은 농도에서 내성 장구균을 억제했다.
이번 발견은 2002년 해당 세균의 유전체가 완전 해독된 이후 20년간의 기초 연구에서 비롯됐다. 챌리스 교수팀은 항생제 합성 효소를 단계적으로 제거해 대사 경로를 추적하던 중 여러 미완성 중간체를 발견했으나, 당시에는 의미를 알지 못해 보관했다. 이후 2017년 한 대학원생이 항균 활성을 재검증하면서 강력한 효과가 밝혀졌다. 챌리스 교수는 “단순한 생화학 연구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세월이 지나 새로운 항생제의 출발점이 됐다”며 “자연이 만들어낸 예측 불가능한 결과의 힘”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