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해 하루 1만 보를 걸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지만 매일 이 목표를 채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출퇴근 대부분을 차량이나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고 장시간 앉아서 근무하는 직장인이라면 하루 걸음 수가 5000보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에는 단순히 얼마나 많이 걷는가뿐 아니라 어느 정도 속도로 걷는지도 건강과 관련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2026년 9월 8일 British Journal of Sports Medicine에 발표된 연구에서 연구진은 영국 바이오뱅크에 등록된 성인의 손목형 활동량 측정 데이터를 이용해 하루 걸음 수와 걷기 강도, 전체 사망 및 심혈관질환 사망 위험의 관계를 분석했다. 주요 전체 사망 분석에는 6만4743명이 포함됐으며 평균 연령은 약 61.5세였다.
연구진은 하루 걸음 수를 5000보 미만, 5000~7500보, 7500~1만 보, 1만 보 초과로 구분하고 하루 중 가장 빠르게 걸었던 30분의 평균 보행 속도를 함께 살펴봤다. 분석 결과 하루 7500~1만 보를 걷는 집단에서 전체 사망 위험이 가장 낮은 경향이 관찰됐으며, 이 구간에서는 분당 약 100보 수준의 보행 속도에서 가장 낮은 위험이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걸음 수가 적은 사람에게서도 걷는 속도와 건강 위험의 연관성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하루 5000보 미만을 걷더라도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걷는 경우 낮은 전체 사망 위험과 연관됐고, 5000~7500보 수준에서도 빠르게 걷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유사한 경향이 나타났다.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 분석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관찰됐다.
연구진은 특히 하루 걸음 수를 충분히 늘리기 어려운 사람에게 이러한 결과가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간 부족이나 신체적 제한, 주변 환경 등의 이유로 장시간 걷기 어려운 경우라면 무조건 1만 보를 채우려 하기보다 일정 시간 보행 속도를 높이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에서는 하루 7500보 이하를 걷는 사람에게 비교적 빠른 속도의 걷기를 하루 약 30분 유지하는 것이 낮은 사망 위험과 연관됐다.
빠르게 걷는다고 해서 무조건 뛰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체력과 연령에 따라 적절한 강도는 달라질 수 있다. 평소보다 호흡이 조금 빨라지고 몸에 열이 나지만 짧은 문장으로 대화할 수 있는 정도의 속도가 현실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 처음부터 오랜 시간 빠르게 걷기보다 출퇴근길이나 점심시간 산책처럼 일상 속 이동에서 걷는 속도를 조금씩 높이는 방식이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이번 연구는 관찰 연구이기 때문에 빠르게 걷는 행동 자체가 사망 위험을 낮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평소 건강 상태와 체력, 식습관, 흡연과 음주, 다른 신체활동 등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연구진 역시 걸음 수와 보행 강도를 함께 고려한 생활습관 연구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가 전하는 핵심은 하루 1만 보라는 숫자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걷는 양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생활환경에 맞춰 걷는 속도와 시간을 조절하는 것도 현실적인 건강관리 방법이 될 수 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가며 하루 중 일부 구간만 평소보다 빠르게 걷는 작은 변화부터 시작하는 것이 건강한 걷기 습관을 만드는 방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