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감기나 방광염 때문에 항생제를 먹은 적이 없는데도 몸속에 항생제가 잘 듣지 않는 세균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학계에서 확인되고 있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이런 현상의 상당 부분은 장 속에 사는 세균들끼리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직접 주고받으면서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생제를 먹지 않았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뜻이어서 주목된다.
항생제 내성은 세균이 특정 항생제의 공격을 견뎌내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세균이 내성을 얻는 경로 중 하나는 유전자 돌연변이지만, 더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지는 경로는 이미 내성을 가진 다른 세균으로부터 유전자 조각을 통째로 넘겨받는 방식이다. 이런 유전자 교환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장소 중 하나로 사람의 장이 꼽히고 있다.
사람의 장에는 수백 종이 넘는 세균이 촘촘하게 뒤엉켜 살고 있다. 이 세균들은 서로 다른 종이라도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접촉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유전 정보를 담은 작은 고리 모양의 유전물질인 플라스미드나 세균에 감염되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를 통해 유전자를 주고받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연구진은 이런 접촉이 항생제 내성 유전자 확산의 핵심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연구진이 주목한 부분은 항생제에 노출된 적이 없는 세균도 장 속에서 내성 유전자를 넘겨받아 갑자기 내성균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사람이 항생제를 복용하지 않았더라도, 장 속에 원래 있던 무해한 세균이 외부에서 들어온 내성균과 만나 유전자를 주고받으면 내성을 갖춘 세균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항생제 사용 이력만으로 내성균 보유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균 사이 유전자 교환이 일어나는 배양 환경 [그림=메디닉스DB]
이런 현상이 특히 우려되는 이유는 장내세균 일부가 평소에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다가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다른 질환으로 몸이 약해졌을 때 감염을 일으키는 기회감염균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세균이 이미 내성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정작 항생제 치료가 필요한 순간에 약이 듣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람은 여러 경로로 외부의 내성균이나 내성 유전자에 노출될 수 있다. 충분히 익히지 않은 육류, 씻지 않은 채소, 오염된 물 등을 통해 내성균이 몸 안으로 들어올 수 있고, 이렇게 들어온 세균이 장에 자리 잡은 기존 세균과 만나면서 유전자 교환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해외 보건당국과 세계보건기구도 이런 경로를 항생제 내성 확산의 중요한 축으로 보고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질병관리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항생제 내성균 발생 동향을 주기적으로 살펴보고 있으며, 사람과 동물, 환경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항생제 내성 문제는 병원 안에서만 관리한다고 해결되지 않으며, 식품과 환경 전반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한감염학회 등 관련 학회에서도 불필요한 항생제 처방과 복용을 줄이는 것이 내성 유전자 확산을 늦추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항생제를 자주 접하는 환경일수록 내성균과 내성 유전자가 살아남고 퍼질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정해진 용법과 기간에 맞춰 사용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정해진 기간 동안 항생제를 복용하는 것이 중요 [그림=메디닉스DB]
일반인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의사가 처방한 항생제는 증상이 나아졌다고 임의로 중단하지 말고 정해진 기간 동안 끝까지 복용해야 하며, 남은 약을 보관했다가 다른 증상에 임의로 먹는 일은 피해야 한다. 손 씻기와 음식 위생을 철저히 지키는 것도 내성균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경로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균형을 지키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다양한 식이섬유와 발효식품을 통해 장내세균의 다양성을 유지하면, 특정 내성균이 우세하게 자리 잡거나 유전자를 퍼뜨리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방법이 이미 생긴 내성을 없애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알아둘 필요가 있다.
설사나 요로감염 등으로 항생제 치료를 받았는데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거나 반복적으로 재발한다면 내성균 감염을 의심해보고 병원을 다시 찾아 정확한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특히 최근 해외여행이나 입원 경험이 있다면 진료 시 이 사실을 의료진에게 알려 내성균 검사 여부를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