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몇 초간 멍하니 초점을 잃거나, 팔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온몸이 뻣뻣해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면 뇌전증 증상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뇌전증은 뇌의 신경세포가 일시적으로 과도하게 흥분해 발작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질환으로, 발작의 형태가 사람마다 크게 달라 알아채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장 흔히 떠올리는 형태는 온몸이 뻣뻣해지면서 팔다리를 규칙적으로 떠는 전신 강직간대발작이다. 의식을 완전히 잃고 쓰러지며 입에 거품이 생기거나 혀를 깨물 수도 있고, 발작이 끝난 뒤에는 극심한 피로감과 함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결신발작도 있다. 특히 소아에서 흔히 나타나며, 하던 행동을 멈추고 몇 초간 눈을 깜빡이거나 허공을 응시하다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하던 일을 이어가기 때문에 단순히 딴생각을 하거나 집중력이 떨어진 것으로 오해받기 쉽다.
뇌의 특정 부위에서만 이상 신호가 발생하는 국소발작은 증상이 더욱 다채롭게 나타난다. 한쪽 팔다리만 저리거나 떨리는 감각·운동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이상한 냄새나 맛을 느끼거나 갑작스러운 공포감, 낯선 기시감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어 정신적인 문제로 오인되기도 한다.

결신발작은 짧은 순간 멍해지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림=메디닉스DB]
발작이 시작되기 전 특유의 전조 증상, 이른바 아우라를 느끼는 환자도 적지 않다. 속이 메스껍거나 어지럽고, 시야가 흐려지거나 반짝이는 빛이 보이는 등의 감각이 짧게 스쳐 지나간 뒤 본격적인 발작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 이런 신호를 미리 알아두면 안전한 곳으로 미리 이동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뇌전증의 원인은 다양하다. 대한뇌전증학회에 따르면 뇌졸중이나 뇌종양, 뇌염 등 뇌에 생긴 구조적 손상이나 염증, 출생 전후의 뇌 손상, 유전적 요인 등이 원인이 될 수 있으며, 검사를 거쳐도 명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작이 반복되면 뇌파검사와 뇌 자기공명영상 등을 통해 뇌전증 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한 번의 발작만으로는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발작의 양상과 지속 시간, 발생 당시 상황을 최대한 자세히 기록해두면 진료 시 정확한 진단에 도움이 된다.
눈앞에서 발작이 일어났을 때는 당황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주변의 위험한 물건을 치우고 머리 아래에 부드러운 것을 받쳐 다치지 않도록 하며, 몸을 억지로 붙잡거나 입에 무언가를 물리려 하지 말고 옆으로 눕혀 기도를 확보한 채 발작이 자연스럽게 멈출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발작 목격 시 옆으로 눕혀 기도를 확보해야 한다 [그림=메디닉스DB]
발작이 5분 이상 계속되거나,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채 발작이 반복되는 경우, 호흡 곤란이나 외상이 동반된 경우에는 지체 없이 119에 신고해 응급 처치를 받아야 한다. 특히 처음 발작을 겪은 경우라면 원인 파악을 위해 반드시 병원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진단 후에는 항경련제 복용을 통해 발작을 조절하는 것이 치료의 기본이 된다. 질병관리청은 임의로 약 복용을 중단하면 오히려 발작이 악화될 수 있다고 설명하며, 의료진과 상의해 꾸준히 복용량을 조절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평소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과도한 음주와 스트레스를 피하는 등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발작 예방에 도움이 된다. 잦은 결신발작이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 감각, 반복되는 근육 경련 등이 나타난다면 가볍게 넘기지 말고 신경과 진료를 통해 정확한 원인을 확인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