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나 조경, 방역처럼 업무 과정에서 농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사람은 근위축성측삭경화증, 이른바 루게릭병의 발생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농약 노출 수준이 높은 집단에서 위험 증가 폭이 더 크게 나타나 직업적 환경 요인과 퇴행성 신경질환의 연관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제학술지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에 8월 4일 온라인 발표된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에서는 1990년부터 2025년까지 발표된 연구 가운데 직업적 농약 노출과 루게릭병 발생을 분석한 사례대조연구 8편을 종합했다. 분석에는 루게릭병 환자 1734명이 포함됐다.
분석 결과 직업적으로 농약에 한 번이라도 노출된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루게릭병 발생 위험이 약 1.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약 종류별로는 제초제 노출에서 약 1.7배, 살충제와 살균제 노출에서 각각 약 1.6배의 연관성이 관찰됐다. 특히 농약에 높은 수준으로 노출된 집단은 비노출군과 비교해 위험이 약 2.7배로 나타나 노출 정도와 질환 위험 사이의 관계를 추가로 연구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루게릭병은 뇌와 척수에서 근육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운동신경세포가 점차 손상되는 진행성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초기에는 한쪽 손이나 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물건을 자주 떨어뜨리고, 평소보다 자주 넘어지는 변화로 시작할 수 있다. 근육이 저절로 꿈틀거리는 근육 떨림이나 경련이 나타나기도 하며 일부 환자에서는 발음이 어눌해지거나 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증상이 먼저 발생한다.
질환이 진행하면 팔과 다리뿐 아니라 말하기와 삼키기, 호흡에 사용하는 근육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반면 감각 기능은 비교적 유지되는 경우가 많아 손발의 힘은 계속 떨어지는데 저림이나 감각 소실이 뚜렷하지 않은 양상을 보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한쪽 손의 근력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거나 계단을 오르기 어려워지고, 원인을 설명하기 힘든 근육 위축과 발음 변화가 점차 악화된다면 신경과적 평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번 연구를 농약에 노출되면 루게릭병이 발생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분석에 포함된 연구가 8편으로 많지 않았고 대부분 관찰연구였으며, 과거 농약 노출 정도를 정확히 측정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연구진 역시 일부 연구에서 노출을 참가자의 기억에 의존해 평가했다는 점과 연구 간 차이가 존재했다는 점을 한계로 제시했다. 따라서 이번 결과는 인과관계를 확정하기보다는 직업적 농약 노출이 잠재적인 위험요인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일반 소비자가 가정에서 일시적으로 농약이나 살충제를 사용한 상황과 장기간 반복적으로 직업 노출을 경험한 경우도 동일하게 볼 수 없다. 농약을 취급하는 직업에서는 제품별 안전수칙과 보호장비를 지키고 피부 접촉이나 흡입 노출을 줄이는 기본적인 작업환경 관리가 중요하다.
루게릭병은 초기 증상이 손목질환이나 척추질환, 말초신경질환 등 다른 질환과 비슷하게 나타날 수 있어 증상 하나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근력 저하와 근육 위축, 발음이나 삼킴 장애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경우에는 단순한 피로나 노화로 넘기지 않고 정확한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