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아랫배가 갑자기 콕콕 쑤시듯 아파오면 많은 사람이 맹장염, 즉 충수염부터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충수염은 통증이 주로 오른쪽 아랫배에서 시작되는 반면, 왼쪽 아랫배 통증은 대장 벽 일부가 바깥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게실에 염증이 생기는 게실염일 가능성이 높다. 이름이 낯설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식습관이 서구화되면서 국내에서도 흔해지고 있는 소화기 질환 중 하나다.
게실은 대장 벽의 약한 부분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풍선처럼 밖으로 튀어나온 작은 주머니를 말한다. 대부분 별다른 증상 없이 지내다가 우연히 대장내시경이나 복부 영상 검사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주머니 안에 대변이나 이물질이 갇혀 세균이 증식하면 염증과 부종이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게실염이다. 게실 자체는 병이 아니지만 염증이 동반되면 통증과 발열 등 급성 증상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바뀐다.
게실염이 왼쪽 아랫배 통증으로 잘 나타나는 이유는 대장 가운데서도 에스자 모양으로 굽어 있는 구불결장에 게실이 특히 잘 생기기 때문이다. 이 부위는 대장 내용물이 지나가며 압력이 가장 높게 걸리는 구간으로 꼽힌다. 다만 국내 환자 중에는 오른쪽 대장, 즉 맹장 인근이나 상행결장에 게실이 생기는 경우도 드물지 않아 통증 위치만으로 충수염과 완전히 구별하기는 어렵다는 점도 함께 알아두는 것이 좋다.
게실염의 대표적인 증상은 지속적으로 심해지는 왼쪽 아랫배 통증이다. 처음에는 은근한 불편감으로 시작해 몇 시간에 걸쳐 점차 날카로워지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발열, 오한, 메스꺼움, 복부 팽만감이 함께 나타날 수 있고 변비나 설사 등 배변 습관의 변화가 동반되기도 한다. 배를 눌렀을 때 통증이 심해지거나 반대로 눌렀다가 뗄 때 통증이 튀는 느낌이 있다면 염증이 상당히 진행됐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왼쪽 아랫배 통증은 게실염의 대표 증상 [그림=메디닉스DB]
게실염 발병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섬유질 섭취가 부족하고 육류 위주 식단을 오래 지속하면 대변이 딱딱해지고 대장 내 압력이 높아져 게실이 잘 생긴다. 나이가 들수록 대장 벽 근육과 결합조직이 약해지면서 게실염 위험이 커지고, 비만이나 흡연, 운동 부족, 만성 변비도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특정 소염진통제를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복부 컴퓨터단층촬영이 가장 널리 쓰인다. 이를 통해 게실 위치와 염증 범위, 농양이나 천공 등 합병증 동반 여부를 함께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혈액검사로 염증 수치가 오른 정도를 살피기도 한다. 다만 급성 염증이 심한 시기에는 대장내시경 검사가 장 천공 위험을 높일 수 있어 피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증상이 가라앉은 뒤 다른 대장 질환을 배제하기 위해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치료는 염증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경미한 게실염은 항생제 복용과 일시적인 저잔사식 또는 유동식 위주 식이조절만으로도 대부분 호전된다. 그러나 농양이 형성되거나 장이 막히거나 천공이 의심되는 중증 게실염은 입원해 정맥 항생제 치료를 받거나 배액술, 경우에 따라 수술적 치료까지 필요할 수 있다. 대한대장항문학회 등 관련 학회는 자가진단으로 진통제만 복용하며 방치하지 말고 정확한 진단을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중증 게실염은 입원 치료가 필요할 수 있어 [그림=메디닉스DB]
게실염을 제때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여러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염증이 반복되면 만성 게실염으로 이어져 장 협착이나 장폐색을 유발할 수 있고, 농양이 터지면 복막염으로 진행해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드물게는 방광이나 질 등 주변 장기와 비정상적인 통로인 누공이 형성되기도 한다. 통증을 참고 넘기기보다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합병증 예방의 핵심이다.
게실염을 예방하려면 평소 식생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채소와 과일, 통곡물 등 섬유질이 풍부한 식품을 충분히 섭취하고 물을 자주 마셔 배변이 부드럽게 유지되도록 돕는 것이 좋다. 붉은 육류와 기름진 음식 섭취는 줄이고 규칙적으로 걷기나 가벼운 운동을 하는 습관도 대장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된다. 질병관리청은 성인 하루 권장 섬유질 섭취량을 채우기 위해 잡곡밥과 채소 반찬 비중을 늘릴 것을 권고하고 있다.
왼쪽 아랫배 통증이 몇 시간 이상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심해지거나 고열, 오한, 혈변이 동반된다면 지체하지 말고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경미한 복부 불편감이라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소화기내과를 방문해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평소 섬유질과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식습관을 들이고, 배변 습관에 변화가 생기면 가볍게 넘기지 말고 전문의와 상담하는 태도가 게실염을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