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나 희귀질환 진단을 받고 나면 환자와 가족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내 몸에 맞는 치료법이 따로 있는지 여부다. 이런 맞춤형 진단과 치료, 즉 정밀의료를 앞당기려면 병든 조직뿐 아니라 정상 조직을 비교 자료로 함께 확보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질병관리청이 이런 연구 기반을 넓히는 정책을 내놨다.
질병관리청은 14일 국립보건연구원이 혁신형 바이오뱅크 사업을 통해 사망 기증자의 정상조직까지 확보하고 있으며, 이를 임상 연구자 주도의 정밀의료 연구 지원에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2025년 한 해 국가 바이오뱅크 사업의 성과를 종합한 25년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 연보를 발간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국내 인체자원은행은 환자에게서 채취한 병변 조직이나 혈액 등 질환 관련 검체를 모으는 데 주로 집중해 왔다. 그러나 특정 유전자나 단백질의 변화가 질병 때문인지 개인차 때문인지 가려내려면 같은 사람의 정상 조직과 비교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에 사망 기증자의 정상조직까지 확보 범위를 넓힌 것은 이런 연구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정상조직 검체는 특히 암 연구에서 대조군 역할을 한다. 종양 조직만 분석해서는 어떤 변화가 암에 특이적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같은 기증자의 정상조직과 나란히 비교하면 질병의 원인이 되는 변화를 훨씬 명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 국립보건연구원은 이런 비교 자원을 갖춘 혁신형 바이오뱅크가 국내 연구자들의 정밀의료 연구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상조직 검체는 정밀의료 연구의 비교자료로 활용된다 [그림=메디닉스DB]
이번에 함께 공개된 25년 국립중앙인체자원은행 연보에는 지난해 한 해 동안 전국 바이오뱅크 네트워크가 수집하고 분양한 인체자원 현황이 종합적으로 담겼다. 국가 바이오뱅크 사업이 매년 발간해온 이 연보는 연구자들이 어떤 종류의 검체를 어느 기관에서 확보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참고자료로 활용돼 왔다.
혁신형 바이오뱅크 사업의 핵심은 자원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임상 연구자가 주도하는 연구 과제와 직접 연계해 성과로 이어지도록 지원한다는 점이다. 질병관리청은 연구자가 필요로 하는 검체 종류와 임상 정보를 미리 파악해 맞춤형으로 자원을 제공하는 체계를 갖춰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신약 개발이나 진단법 연구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바이오뱅크라는 용어가 낯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바이오뱅크는 혈액, 조직, 세포 등 인체에서 유래한 자원과 이와 관련된 임상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 보관, 관리하는 기관을 말한다. 살아있는 환자뿐 아니라 사후 기증을 통해서도 자원이 모이며, 기증자의 동의 절차와 개인정보 보호 규정을 거쳐 연구 목적으로만 활용된다.

연구자 주도 정밀의료 연구에 자원이 연계된다 [그림=메디닉스DB]
사후 조직기증은 장기기증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자발적 의사에 따라 이뤄지며, 기증자의 정상조직이 미래의 환자를 위한 치료법 개발에 쓰인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가 크다. 다만 국내에서는 아직 사후 인체자원 기증에 대한 인식이 충분히 자리 잡지 못한 편이어서, 관련 제도와 절차에 대한 정보 제공이 함께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구 현장의 관점에서 보면 정상조직과 병변조직을 함께 갖춘 자원은 곧 연구의 정확도를 좌우하는 요소다. 이런 자원이 축적될수록 개인의 유전적, 생물학적 특성에 맞춘 진단과 치료 전략을 세우는 정밀의료 연구가 한층 정교해질 수 있다. 결국 이는 특정 치료가 잘 듣는 환자군과 그렇지 않은 환자군을 사전에 구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질병관리청은 앞으로도 혁신형 바이오뱅크 사업을 통해 인체자원의 확보 범위를 넓히고, 임상 연구자와의 연계를 강화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가 바이오뱅크 네트워크가 축적한 자원과 연보에 담긴 성과 정보는 국내 연구기관과 연구자들에게 점차 더 폭넓게 개방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 독자 입장에서 바이오뱅크 정책은 다소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환자 개개인에게 맞는 치료법이 더 빨리 개발되는 결과로 돌아온다. 인체자원 기증에 관심이 있다면 국립보건연구원이나 소재지 인체자원은행을 통해 기증 절차와 활용 목적을 미리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기증은 어디까지나 본인 의사에 따라 신중히 결정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