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 봐온 식재료를 곧바로 냉장고나 냉동고에 넣지 못하고 다른 볼일을 보거나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느라 시간이 늦어지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특히 기온이 높은 여름철에는 이렇게 식재료가 상온에 노출되는 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세균이 빠르게 늘어나 식중독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장을 보는 순간부터 조리 전까지의 전 과정 가운데 귀가하는 시간은 의외로 소홀히 다뤄지는 변수로 꼽힌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중독균이 증식하기 쉬운 온도 구간을 위험온도대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냉장 보관 기준인 5도 이상부터 체온에 가까운 60도 이하 구간에서는 대부분의 식중독균이 짧은 시간에도 활발하게 번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을 본 식재료가 이 구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 수는 계속 늘어난다.
문제는 위험온도대에 머무는 시간이 매장 안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계산을 마친 뒤 다른 매장에 들르거나 대중교통을 기다리고, 자동차에 실은 채 다른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에도 식재료는 계속 상온에 노출된다. 이 모든 시간이 더해지면 실제 상온 노출 시간은 소비자가 체감하는 것보다 훨씬 길어질 수 있다.
특히 육류와 어패류, 우유나 두부 같은 유제품과 콩류 가공품, 이미 조리된 반찬류는 상온에서 세균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른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식품을 장바구니 맨 아래나 가장 늦게 꺼내는 위치에 두면 냉장고에 넣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더 길어져 위험이 커질 수 있으므로 장을 볼 때부터 담는 순서를 고려하는 것이 좋다.

상하기 쉬운 식품은 장바구니에 마지막에 담아야 [그림=메디닉스DB]
세균 증식은 산술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마다 두 배씩 불어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상온 노출 시간이 한두 시간만 늘어나도 초기에는 눈에 띄지 않던 세균 수가 조리나 섭취 시점에는 식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수준까지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 짧다고 여겨지는 이동 시간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등은 상온에 노출된 식재료를 가급적 두 시간 이내에 냉장고로 옮길 것을 권고한다.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한여름에는 이 권고 시간이 더욱 짧아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안내하고 있어, 장을 본 뒤 이동 시간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 별도의 대비가 필요하다.
장을 보는 순서 자체를 바꾸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상온에 두어도 비교적 안전한 채소나 건조식품, 통조림류를 먼저 담고, 냉장이나 냉동이 필요한 육류와 어패류, 유제품은 계산대에 가기 직전 가장 마지막에 담는 방식이 권장된다. 이렇게 하면 이들 식품이 상온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여름철에는 보냉백이나 아이스박스, 얼린 보냉팩을 챙겨 장을 보는 습관도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이동 중 자동차 트렁크는 실외 기온보다 훨씬 높은 온도까지 오를 수 있는 공간이므로 냉장이 필요한 식재료를 트렁크에 오래 방치하는 것은 특히 피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다른 볼일을 먼저 마친 뒤 장보기를 가장 마지막 일정으로 배치하는 것도 방법이다.

보냉백과 아이스팩은 여름철 장보기 필수품 [그림=메디닉스DB]
장보기 동선을 미리 계획해 매장에 머무는 시간과 귀가 시간을 함께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계산 전 매장 안을 여러 차례 오가며 시간을 지체하기보다는 필요한 물품을 미리 목록으로 정리해 이동과 선택에 드는 시간을 줄이면 냉장이 필요한 식품이 상온에 노출되는 총 시간을 자연스럽게 단축할 수 있다.
귀가한 뒤에는 다른 집안일보다 냉장·냉동이 필요한 식재료를 정리하는 일을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포장을 뜯어 옮겨 담는 과정에서 시간을 지체하기보다는 우선 냉장고에 넣어 온도를 낮춘 뒤, 필요하다면 이후에 소분하거나 재포장하는 순서로 진행하는 것이 세균 증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장을 본 뒤 상온 노출 시간이 예상보다 길었던 식재료는 육안으로 이상이 없어 보여도 조리 전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만약 이런 식재료를 섭취한 뒤 구토나 설사, 복통, 발열 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특히 어린이나 고령자, 임신부에게서 증상이 심하거나 탈수 징후가 동반된다면 지체하지 말고 의료기관을 찾아 진료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