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 유럽을 다녀온 뒤 고열과 두통, 몸살이 나타나면 감기나 여행 피로부터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탈리아와 그리스, 스페인 등 웨스트나일바이러스가 확인된 지역을 방문했다면 모기 매개 감염병인 웨스트나일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은 별다른 증상 없이 지나가지만 일부 환자는 뇌염이나 수막염 같은 중증 신경계 질환으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가 8월 7일 발표한 주간 감시자료에 따르면 8월 5일까지 유럽 7개국 59개 지역에서 웨스트나일바이러스의 사람 간 지역사회 감염지역이 확인됐다. 올해 현지에서 감염된 환자는 총 241명으로 이탈리아 139명, 그리스 61명, 스페인 17명, 북마케도니아 13명, 루마니아 6명, 프랑스 4명, 독일 1명이다. 감염지역도 이탈리아 36곳을 포함해 유럽 남부와 중부로 확대되고 있다.
웨스트나일바이러스는 주로 감염된 조류의 피를 흡혈한 모기가 다시 사람을 물면서 전파된다. 일반적인 악수나 대화,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행동으로 사람 사이에 퍼지는 감염병은 아니다. 다만 매우 드물게 수혈이나 장기이식, 임신과 모유수유 과정에서 전파된 사례가 보고돼 있다.
감염자의 약 70∼80%는 특별한 증상을 경험하지 않는다. 증상이 생기면 발열과 두통, 심한 피로, 근육통, 메스꺼움과 구토가 나타날 수 있고 일부에서는 피부 발진이나 림프절 부종이 동반된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독감이나 다른 바이러스 감염과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문제는 약 150명 가운데 1명꼴로 바이러스가 중추신경계를 침범하는 중증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높은 열과 심한 두통에 이어 목이 뻣뻣해지고 방향감각이 떨어지거나 손이 떨리고 경련, 근력 저하, 마비, 의식 저하가 나타날 수 있다. 고령자와 면역기능이 떨어진 사람은 중증으로 진행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
올해 유럽에서는 실제 신경계 침범 사례가 적지 않게 확인됐다. WHO가 7월 24일 공개한 자료에서 당시 그리스 확진자 21명 가운데 20명이 뇌염이나 수막염 등 신경침습성 질환을 보였다. 이후 유럽 전체 감염 규모가 더 증가하면서 여행객도 증상 발생 여부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커졌다.
현재 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는 웨스트나일바이러스 예방백신이나 특정 항바이러스 치료제는 없다. 가벼운 경우에는 휴식과 수분 공급, 증상 조절을 중심으로 치료하며 신경계 침범이 의심되는 중증 환자는 입원해 집중적인 보존치료를 받게 된다. 진단에는 혈액이나 뇌척수액의 특이 항체 검사와 바이러스 유전자 검사 등이 활용될 수 있다.
예방의 핵심은 모기에 물리지 않는 것이다. 유행지역을 여행할 때는 밝은색 긴소매와 긴바지를 착용하고 허가된 모기 기피제를 사용해야 한다. 모기가 활발한 새벽과 해질 무렵에는 야외활동 시간을 줄이고 숙소의 방충망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화분받침이나 빈 용기처럼 물이 고일 수 있는 장소를 없애 모기 번식 환경을 줄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유럽 여행 뒤 열과 근육통이 생겼다고 모두 웨스트나일열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문지역에서 웨스트나일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었고 고열과 심한 두통에 목 경직이나 혼란, 경련, 근력 저하가 동반된다면 단순 감기로 기다려서는 안 된다. 의료기관을 방문할 때 여행 국가와 지역, 귀국 시점, 모기에 많이 물렸는지 여부를 함께 알리는 것이 정확한 진단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