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사료 시간이 되면 먼저 달려오던 강아지가 갑자기 밥그릇 앞에서 냄새만 맡고 돌아선다면 보호자는 입맛이 떨어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먹지 않는 것과 함께 몸을 웅크리고 움직임이 줄거나 구토가 반복된다면 단순한 편식보다 췌장염과 같은 소화기 질환 가능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췌장은 위와 소장 주변에 위치한 기관으로 음식물 소화에 필요한 효소와 혈당 조절에 관여하는 호르몬을 만든다. 췌장에 염증이 생기면 소화효소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주변 조직을 자극하고 복통과 구토, 식욕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 증상의 강도는 매우 다양해 가볍게 지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에서는 전신 상태가 빠르게 나빠질 수 있다.
강아지 췌장염에서 흔히 관찰되는 변화는 갑작스러운 식욕 저하와 반복적인 구토다. 배가 불편해 등을 둥글게 말고 웅크리거나 앞다리는 바닥에 낮추고 엉덩이는 들어 올리는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평소보다 걷기 싫어하고 만지면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물만 마셔도 토하는 경우도 있다.
기름진 음식은 췌장염과 관련해 자주 언급되는 위험요인 가운데 하나다. 명절 음식이나 삼겹살, 튀김, 치킨 껍질처럼 지방 함량이 높은 사람 음식을 갑자기 많이 먹은 뒤 증상이 나타나는 사례가 있다. 다만 모든 췌장염이 한 번의 고지방 식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비만과 일부 내분비질환, 특정 약물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줄 수 있다.
증상만으로 췌장염을 확진하기는 어렵다. 장염이나 위장관 이물, 간·담도질환 등에서도 구토와 식욕부진, 복통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병원에서는 현재 증상과 음식 섭취 이력을 확인하고 혈액검사, 췌장 관련 검사, 복부 초음파 등을 종합해 원인을 평가할 수 있다.
보호자가 집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억지로 먹이는 행동이다. 토하는 강아지에게 사료나 간식을 계속 권하면 구토가 심해질 수 있다. 사람용 소화제나 진통제를 임의로 먹이는 것도 피해야 한다. 특히 일부 사람용 진통제는 반려견에게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췌장염 치료는 증상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탈수가 있다면 수액치료가 필요할 수 있고 구토와 통증을 줄이기 위한 약물이 사용될 수 있다. 상태가 안정되면 수의사의 판단에 따라 소화가 잘되고 지방 함량을 조절한 식사를 조금씩 시작하는 방식이 고려된다.
과거에는 췌장염이 있으면 오랫동안 금식시키는 방식이 사용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환자 상태가 허락한다면 적절한 시점에 영양 공급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다만 구토가 계속되거나 음식 섭취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개별 상태에 맞는 치료가 필요하다.
예방을 위해서는 사람 음식을 갑자기 많이 주지 않는 습관이 중요하다. 특히 비계가 많은 고기와 튀김, 버터가 많이 들어간 음식은 피하는 편이 좋다. 가족 여러 명이 조금씩 간식을 주다 보면 실제 섭취량이 예상보다 많아질 수 있어 하루 급여량을 함께 관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비만한 반려견은 적정 체중을 유지하도록 관리하고, 이전에 췌장염을 앓은 적이 있다면 재발 방지를 위해 식단을 꾸준히 조절해야 한다. 치료 후 식욕이 회복됐다고 바로 기존 간식과 고지방 식품을 다시 주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식욕 저하가 하루 이상 이어지면서 반복적인 구토와 심한 무기력, 복통, 탈수 증상이 나타난다면 빠른 진료가 필요하다. 어린 강아지와 노령견, 기저질환이 있는 반려견은 상태가 더 빠르게 악화될 수 있어 관찰 시간을 길게 잡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강아지가 밥을 먹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사료를 거부하면서 웅크린 자세와 구토, 복부 통증이 함께 나타난다면 단순히 입맛이 없는 문제로 기다리기보다 췌장과 위장관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