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동네를 산책하다가 다리가 저리고 당겨서 몇 걸음마다 멈춰 서야 하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잠깐 쉬거나 허리를 숙이면 증상이 가라앉아 다시 걸을 수 있지만 얼마 못 가 같은 증상이 반복된다. 이렇게 걷다 쉬다를 되풀이하는 특이한 보행 패턴은 척추관협착증을 의심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신호로 알려져 있다.
척추관협착증은 척추뼈 사이로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인 척추관이 나이가 들면서 인대와 뼈, 관절이 두꺼워지고 변형되며 점차 좁아지는 질환이다. 좁아진 통로가 신경 다발을 압박하면서 다리로 내려가는 신경 신호에 이상이 생겨 저림과 통증, 감각 이상이 나타난다. 주로 허리뼈, 즉 요추 부위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허리디스크로 불리는 추간판탈출증과 증상이 비슷해 보여 혼동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통증이 심해지는 상황과 완화되는 자세가 정반대에 가깝다. 두 질환 모두 다리 저림과 통증을 일으키지만 협착증에서만 뚜렷하게 나타나는 독특한 보행 패턴이 두 질환을 구분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허리디스크는 허리를 숙이거나 오래 앉아 있을 때 신경 압박이 심해져 통증이 커지는 경향이 있고,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도 통증이 급격히 심해질 수 있다. 반면 척추관협착증은 오히려 허리를 펴고 서 있거나 걸을 때 증상이 심해지고, 허리를 앞으로 숙이거나 자리에 앉으면 오히려 편해지는 정반대의 특징을 보인다.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자세에 따라 척추관이 만드는 공간의 넓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허리를 곧게 펴면 척추관이 상대적으로 좁아지면서 신경 압박이 심해지고, 허리를 앞으로 숙이면 척추관 공간이 넓어지면서 압박이 줄어드는 원리다. 그래서 협착증 환자는 걷다가 힘들면 자연스레 허리를 숙인 채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걷는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카트를 밀며 걸으면 증상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아 [그림=메디닉스DB]
이렇게 걷다 쉬다를 반복하는 증상을 의학적으로는 신경성 간헐적 파행이라고 부른다. 대개 일정 거리를 걸으면 다리나 엉덩이, 종아리까지 저리고 아프거나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다가, 몸을 앞으로 숙이거나 자리에 앉아 잠시 쉬면 증상이 가라앉는다. 마트에서 카트를 밀며 허리를 숙인 자세로 걸을 때 오히려 덜 힘들다고 느끼는 것도 같은 원리로 설명된다.
통증이 나타나는 부위에서도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허리디스크는 눌린 신경 뿌리를 따라 한쪽 엉덩이에서 다리, 발끝까지 전기가 통하듯 저릿한 통증이 이어지는 경우가 흔한 반면, 척추관협착증은 양쪽 다리나 종아리가 함께 무겁고 저리며 오래 걸을수록 다리에 힘이 빠지는 느낌을 호소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척추관협착증은 척추가 오랜 기간 퇴행성 변화를 겪는 중장년층 이후에 많이 나타나며 고령층이 늘어나면서 진료를 받는 환자도 함께 늘어나는 추세로 알려져 있다. 나이가 들면서 척추 관절과 인대가 두꺼워지고 디스크가 납작해지는 과정에서 척추관이 서서히 좁아지기 때문에 특별한 외상 없이도 증상이 서서히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영상 검사로 척추관이 좁아진 정도를 확인한다 [그림=메디닉스DB]
진단은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과 보행 양상을 자세히 듣는 문진에서 출발해 자기공명영상, 즉 MRI나 컴퓨터단층촬영 같은 영상 검사로 척추관이 좁아진 정도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다리가 저리고 아픈 다른 원인과 구분하기 위한 신경학적 진찰과 추가 검사가 함께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치료는 증상 초기에는 약물치료와 물리치료, 자세 교정 운동을 병행하며 경과를 지켜보는 경우가 많다. 증상이 심하거나 보존적 치료에도 호전이 없을 때는 신경 압박을 줄이는 시술이나 수술적 치료를 고려하게 되며, 구체적인 치료 방법은 증상의 정도와 환자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평소 생활에서는 허리를 곧게 편 채 오래 서 있는 자세보다 적절히 움직이며 자세를 바꾸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걷기 운동을 할 때는 지팡이나 카트처럼 상체를 살짝 지지할 수 있는 도구를 활용하고, 허리와 배 주변 근육을 강화하는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꾸준히 병행하는 것이 좋다.
걷다 쉬다를 반복하는 다리 저림이 몇 주 이상 이어지거나 점차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짧아진다면 정형외과나 신경외과를 찾아 정확한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리 힘이 눈에 띄게 빠지거나 대소변 조절에 이상이 느껴지는 경우는 신경 손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으므로 지체하지 말고 진료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