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배나 앞다리 안쪽처럼 특정 부위만 유독 핥아 털이 듬성듬성 빠진 모습을 보이면 보호자는 대개 피부병부터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피부에 뚜렷한 발진이나 딱지, 붉은 기가 없는데도 특정 부위만 반복적으로 털이 빠지는 경우라면 스트레스로 인한 과도한 그루밍, 이른바 심인성 탈모의 가능성도 함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심인성 탈모는 고양이가 불안이나 긴장, 스트레스를 느낄 때 이를 스스로 해소하기 위해 특정 부위를 반복적으로 핥거나 물어뜯으면서 나타나는 탈모 증상을 말한다. 그루밍은 원래 고양이의 지극히 정상적인 자기관리 행동이지만, 심리적 긴장이 지나치게 쌓이면 이 행동이 과도해지면서 실제로 눈에 띄게 털이 빠질 정도로 진행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증상이 곰팡이성 피부염이나 옴진드기 감염, 음식이나 환경에 의한 알레르기성 피부질환과 겉으로 보기에 매우 비슷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많은 보호자들이 항진균제나 항생제 연고부터 찾아 발라보게 되는데, 정작 원인이 스트레스라면 이런 국소 처치만으로는 증상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반복될 수 있다.
심인성 탈모와 감염성 피부질환을 구분하는 단서 중 하나는 탈모 부위 피부의 상태다. 진드기나 곰팡이 감염은 대개 피부가 붉어지거나 각질, 딱지가 동반되고 가려움으로 인해 생긴 상처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심인성 탈모는 피부 자체는 비교적 깨끗한 편이고, 털만 마치 가위로 자른 듯 짧게 남은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감염 여부 확인 위해 피부 상태 살펴보는 모습 [그림=메디닉스DB]
또한 심인성 탈모는 고양이가 스스로 혀로 닿을 수 있는 부위, 즉 배와 옆구리, 앞다리 안쪽, 꼬리 아래쪽 등에 좌우 대칭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로 등이나 목덜미처럼 혀가 닿기 어려운 부위에는 상대적으로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도 감별에 참고할 만한 특징이다.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이사나 가구 재배치처럼 익숙한 환경이 갑자기 바뀌는 경우, 새로운 반려동물이나 가족 구성원이 생기는 경우, 보호자의 외출이 잦아지거나 생활 패턴이 불규칙해지는 경우 모두 고양이에게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다. 다묘가정에서 다른 고양이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긴장도 흔히 꼽히는 원인이다.
고양이는 통증이나 불안을 잘 드러내지 않고 숨기는 동물로 알려져 있어, 보호자가 눈치채기 전까지 스트레스가 상당히 누적된 경우가 적지 않다. 그루밍은 본래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행동인데, 이 진정 행동이 반복되고 강도가 점점 세지면서 습관적이고 강박적인 형태로 굳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특정 부위의 탈모를 발견했다면 자가 판단으로 연고나 스프레이를 바르기보다 동물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우선이다. 수의사는 피부 소파검사, 진균 배양검사, 필요시 알레르기 검사 등을 통해 감염성 질환이나 알레르기 가능성을 먼저 배제한 뒤에야 심인성 탈모로 판단하게 된다.

환경 개선은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어 [그림=메디닉스DB]
심인성 탈모로 확인되면 치료의 핵심은 약물보다 환경 개선에 있는 경우가 많다. 고양이가 편하게 숨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스크래처나 캣타워, 장난감 같은 놀이 자원을 늘려 지루함을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급여 시간이나 놀이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해 예측 가능한 생활 패턴을 만들어주는 것도 불안 완화에 보탬이 된다.
다묘가정이라면 고양이마다 별도의 화장실과 식기,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자원을 두고 벌어지는 경쟁과 갈등을 줄여주는 것이 좋다. 화장실이 지저분하거나 마릿수에 비해 개수가 부족한 경우에도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고양이 한 마리당 화장실 한 개 이상을 두는 기준에 맞춰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탈모 부위의 피부가 이미 헐거나 진물, 출혈이 동반되는 경우, 또는 환경을 개선해도 과도한 그루밍 행동이 몇 주 이상 지속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동물병원을 다시 찾아야 한다. 스트레스 관리만으로 호전되지 않을 때는 행동치료나 전문적인 상담이 함께 필요할 수도 있으므로, 증상을 가볍게 넘기지 말고 수의사와 꾸준히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