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씨에 냉방시설을 오래 이용한 뒤 발열과 몸살, 기침이 나타나면 흔히 냉방병이나 감기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고열과 호흡곤란이 이어지고 설사나 의식 혼란까지 동반된다면 레지오넬라증 가능성도 살펴야 한다. 레지오넬라증은 물속에서 증식한 레지오넬라균이 미세한 물방울 형태로 공기 중에 퍼지고, 이를 사람이 들이마시면서 발생하는 호흡기 감염증이다. 질병관리청은 집단발생이 주로 여름부터 초가을 사이에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주요 감염원은 대형 건물 냉각탑과 샤워기, 수도꼭지, 온천, 장식분수, 가습기, 호흡기 관리기기처럼 물을 작은 입자로 퍼뜨릴 수 있는 시설이다. 물의 흐름이 느리거나 멈춰 있고 소독이 충분하지 않으며 배관 안에 침전물과 생물막이 쌓인 환경에서는 균이 증식하기 쉽다. 다만 가정용 벽걸이 에어컨이나 자동차 에어컨은 물을 이용해 공기를 냉각하는 구조가 아니어서 일반적으로 레지오넬라 감염원이 되지 않는다.

레지오넬라증은 크게 폐렴형과 독감처럼 지나가는 폰티악열로 구분된다. 폐렴형은 보통 노출 후 2일에서 10일 사이에 발열과 오한, 기침, 근육통, 두통, 숨참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일부 환자는 설사와 메스꺼움, 혼란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폰티악열은 비교적 가벼운 발열과 근육통이 중심이며 폐렴으로 진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50세 이상, 현재 또는 과거 흡연자, 만성폐질환자, 당뇨병이나 신장질환이 있는 사람, 면역기능이 저하된 사람은 폐렴형 레지오넬라증 위험이 높다. 같은 공간을 이용했더라도 건강한 젊은 사람보다 증상이 심해질 가능성이 있어 호텔이나 병원, 목욕시설, 대형 건물에 머문 뒤 고열과 호흡기 증상이 생겼다면 이용 장소와 시기를 의료진에게 알려야 한다.

레지오넬라증은 일반 폐렴과 증상이 비슷해 증상만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최근 여행이나 숙박, 온천 이용, 병원 입원, 대형 건물 체류 이력이 진단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고열이 지속되거나 숨이 차고 가슴이 아픈 경우, 의식이 흐려지거나 물을 마시기 어려울 정도로 처진다면 단순한 냉방병으로 버티지 말고 신속히 의료기관을 찾아야 한다.

감염 예방의 핵심은 물을 사용하는 시설의 정기적인 관리다. 건물 관리자는 냉각탑과 급수시설을 청소하고 적정 소독 상태와 수온, 물의 정체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가정에서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샤워기나 수도를 바로 얼굴에 대기보다 잠시 물을 흘려보내고, 가습기 물은 자주 교체하며 내부를 깨끗하게 관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레지오넬라증은 일반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전파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환자를 무조건 격리하거나 일상적인 접촉을 두려워하기보다 감염 가능성이 있는 수계시설을 확인하고 고위험군의 증상을 빠르게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여름철 냉방환경에서 생긴 몸살 증상이 며칠째 악화된다면 냉방병이라는 익숙한 이름에만 기대지 말고 폐렴 신호를 함께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