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당직 끝나고 병원 나설 때마다 기분이 좀 묘합니다. 몸이 힘든 건 당연한데, 그보다도 사람한테 반응하는 제 감정이 너무 닳아 있는 느낌이 들어서요. 환자나 보호자 앞에서는 최대한 차분하게 설명하고 버티는데, 정작 혼자 엘리베이터 타면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날 때가 있습니다. 원래도 일이 많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바쁘다기보다 계속 쫓기고 있다는 감각만 남더라고요.
내과가 원래 체력전인 건 알고 들어왔고,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있으면 체력보다 더 먼저 닳는 게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새벽에 콜 여러 개 겹치고, 아침 회진 이어지고, 중간에 보호자 설명까지 몰리면 내가 지금 뭘 놓치고 있진 않은지 그 생각만 계속 듭니다. 실수하지 말자는 긴장감으로 버티는데, 그 긴장감이 집에 가서도 안 풀립니다. 누워 있어도 자꾸 호출음 들리는 것 같고, 쉬는 날에도 다음 당직 생각부터 납니다.
가끔 제일 무서운 건 힘든 것 자체보다 익숙해지는 쪽입니다. 예전엔 안쓰럽고 답답하고 여러 감정이 분명했는데, 요즘은 너무 지치면 그냥 기능적으로만 움직이게 됩니다. 그게 편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라도 안 하면 하루가 안 굴러가니까요. 주변에서도 다 비슷하다고 하고, 저보다 더 오래 버틴 선생님들도 많으니 유난 떨 일은 아닌가 싶다가도, 이 상태를 오래 끌면 결국 어디선가 티가 날 것 같아서 좀 걱정됩니다.
다들 비슷하게 버티는지 궁금해서 써봤습니다. 저처럼 퇴근하고도 머리가 안 꺼지는 분들 있는지, 번아웃 비슷하게 올 때 본인만의 루틴 같은 게 있었는지요. 거창한 거 말고 진짜 현실적으로, 잠깐이라도 숨 돌리는 데 도움 됐던 게 있으면 듣고 싶습니다. 저도 요즘은 대단한 해결책보다 그냥 덜 마모되는 방법이 더 궁금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