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진짜 별일 없이 사는 것 같은데, 가만 보면 소소하게 웃긴 일은 계속 생기더라. 아침에 출근하려고 집 나왔는데 이어폰 한쪽이 또 사라진 거임. 분명 어제 침대 옆에 뒀는데, 내 방은 약간 블랙홀이라 물건이 한 번 들어가면 생사 확인이 안 됨. 결국 예전에 편의점에서 급하게 샀던 유선 이어폰 찾아서 들고 나갔는데, 이게 또 목에 걸리니까 괜히 2014년 감성 돌아와서 혼자 피식함. 남들은 에어팟으로 깔끔하게 사는데 나는 줄 꼬인 이어폰 풀면서 하루 시작하는 거 보니까, 연애도 이런 식으로 자꾸 시대에 뒤처지는 건가 싶더라.
점심시간에는 회사 근처 카페 갔는데, 옆 테이블에 소개팅 하는 것 같은 남녀가 앉아 있었음. 내가 너무 의식한 건지 모르겠는데, 남자분이 웃을 때마다 약간 힘 들어간 느낌이 딱 보여서 괜히 남 일 같지가 않았음. 나도 소개팅 나가면 괜히 평소보다 물 한 모금 더 천천히 마시고, 리액션 오바하다가 집에 와서 “아 그 멘트 왜 했지” 복기하는 스타일이라. 근데 그걸 남이 하는 걸 보니까 좀 귀엽기도 하고, 동시에 아 저게 남이 보기엔 저렇게 보이는구나 싶어서 정신 번쩍 들었음. 다음에 나가면 제발 혼자 토크쇼 하지 말고 상대 말 좀 잘 들어야겠다는 다짐만 또 추가됨.
퇴근하고 집 오는 길에는 바람이 좀 시원해서 일부러 한 정거장 먼저 내려서 걸어왔거든. 요즘 이런 게 은근 좋더라. 딱히 대단한 일 없어도 편의점 들러서 캔커피 하나 사고, 동네 골목 천천히 걷다가 불 켜진 집들 보면 괜히 마음이 좀 가라앉음. 물론 감성은 거기까지고, 집 오자마자 냉장고 열었는데 먹을 거 없어서 계란이랑 김치로 저녁 해결함. 서울 사는 20대 남자의 낭만이란 결국 이런 건가 싶었음. 분위기는 영화인데 식단은 자취 4일 차 대학생 느낌.
근데 또 이런 별거 없는 날들이 쌓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음. 맨날 엄청난 일이 생기면 그것도 피곤하잖아. 가끔은 오늘 뭐 했냐고 물으면 대답할 게 애매한 하루도 있어야 되는 듯. 다들 요즘 일상에서 “이게 뭐라고” 싶은데 이상하게 기억나는 소소한 거 있냐? 나는 당분간 이어폰부터 찾아야 할 듯. 짝은 못 찾아도 이어폰 한쪽은 좀 찾고 싶다. 인생 난이도 너무 순서가 이상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