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 생수,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식, 영수증 등 일상 곳곳에서 접촉하는 화학물질이 체내 호르몬 체계를 교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는 가운데, 환경호르몬 노출과 비만·당뇨병 등 대사질환 발생 위험 사이의 연관성을 살펴보는 연구가 최근 늘고 있다. 학계에서는 아직 명확한 인과관계가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축적된 연구 결과들이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환경호르몬은 내분비교란물질로 불리며, 체내에 들어가면 호르몬과 비슷한 구조로 작용해 정상적인 내분비 신호 체계를 방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비스페놀A, 프탈레이트류, 일부 방향제 성분 등이 꼽히며, 이들 물질은 플라스틱 용기, 영수증 감열지, 화장품, 식품 포장재 등 다양한 제품에서 검출될 수 있다.
대한내분비학회 등 국내외 학회에서는 내분비교란물질이 지방세포 분화와 인슐린 신호 전달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실험 결과들을 주목하고 있다. 동물실험에서는 특정 화학물질에 노출된 개체가 체지방 축적이 늘고 혈당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양상을 보였다는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역학 연구에서도 소변이나 혈액 내 환경호르몬 농도가 높게 측정된 집단에서 비만이나 제2형 당뇨병 유병률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는 분석이 제시된 바 있다. 다만 연구자들은 이러한 상관관계가 곧바로 인과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환경호르몬과 대사질환 연관성을 살피는 연구가 이어진다 [그림=메디닉스DB]
전문가들은 환경호르몬이 대사질환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로 지방세포 증식 촉진, 인슐린 저항성 유발, 식욕 조절 호르몬 교란 등 여러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태아기나 영유아기처럼 발달이 활발한 시기에 노출될 경우 성인이 된 이후 대사질환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연구 방향도 주목받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용 기구와 용기, 포장재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에 대해 안전 기준을 마련해 관리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유통되는 제품은 이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일상에서 완전히 노출을 피하기는 어려운 만큼, 소비자 스스로 노출을 줄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권장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플라스틱 용기를 전자레인지에 사용하거나 뜨거운 음식을 담을 때 화학물질 용출이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하며, 가급적 유리나 스테인리스 재질의 용기를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영수증을 만진 뒤 손을 씻거나 음식과의 직접 접촉을 줄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유리·스테인리스 용기 사용이 노출을 줄이는 데 도움될 수 있다 [그림=메디닉스DB]
연구자들은 환경호르몬과 대사질환의 연관성을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추적 관찰과 다양한 연령대를 포괄하는 대규모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까지 발표된 연구들은 대부분 특정 집단이나 짧은 기간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일반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여러 연구 결과가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 비만이나 당뇨병 관리에 있어 식습관과 운동뿐 아니라 생활 속 화학물질 노출 관리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대사질환 예방 생활습관 지침에 환경호르몬 노출 관리 항목을 포함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일상에서는 플라스틱 용기 대신 유리나 스테인리스 용기를 사용하고,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울 때는 플라스틱 랩이나 용기 사용을 피하는 것이 좋다. 영수증을 만진 뒤에는 손을 씻고, 가공식품보다 신선식품 위주로 식단을 구성하는 습관도 노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비만이나 혈당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생활습관 개선과 함께 정기적인 건강검진으로 대사 지표를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