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치나 스케일링을 받은 뒤 별다른 이유 없이 미열과 오한이 몇 주째 이어진다면 단순한 몸살로 넘기기 전에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할 질환이 있다. 바로 입안의 세균이 혈류를 타고 심장까지 이동해 판막에 염증을 일으키는 감염성 심내막염이다. 치과 치료와 심장질환이라는 얼핏 무관해 보이는 두 영역이 실제로는 세균 감염이라는 하나의 경로로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심내막염은 심장의 가장 안쪽 막인 심내막, 특히 판막 조직에 세균이나 곰팡이 등 병원체가 자리 잡아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초기에 발견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판막 자체가 손상되어 심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고, 판막에 붙어 있던 균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 뇌나 다른 장기의 혈관을 막는 색전증을 일으킬 위험도 있다.
입안에는 원래 수많은 세균이 서식하고 있는데, 발치나 잇몸 치료, 스케일링처럼 잇몸에서 출혈이 발생하는 시술을 받으면 이 세균들이 상처를 통해 혈류로 들어갈 수 있다. 이를 균혈증이라 부르는데, 건강한 사람은 대부분 면역체계가 이 세균을 짧은 시간 안에 제거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심장판막에 이미 손상이나 이상이 있는 경우 세균이 그 부위에 달라붙어 증식할 여지가 생긴다.
인공판막을 이식받았거나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는 사람, 과거 심내막염을 앓은 적이 있는 사람, 류마티스성 심장병 등으로 판막이 손상된 사람은 상대적으로 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심장학회와 관련 치과 학회는 이런 고위험군의 경우 발치나 잇몸 수술 등 출혈을 동반하는 치과 시술 전 예방적 항생제 복용을 고려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잇몸 출혈 동반 시술은 균혈증 위험 높여 [그림=메디닉스DB]
심내막염의 증상은 처음에는 감기나 몸살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뚜렷한 이유 없이 지속되는 미열이나 오한, 전신 피로감, 식욕부진, 체중감소가 대표적이다. 병이 진행되면 이전에 없던 심잡음이 새로 들리거나, 손발톱 밑에 작은 출혈 반점이 생기고, 손가락 끝이나 발바닥에 통증을 동반한 붉은 결절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증상이 비특이적이다 보니 환자와 의료진 모두 심내막염을 곧바로 의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그만큼 진단까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확진을 위해서는 혈액배양검사로 원인균을 찾고, 심장초음파로 판막에 균 덩어리나 손상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진단이 늦어질수록 판막 손상이나 심부전, 뇌졸중 같은 합병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치료는 원인균에 맞는 항생제를 정맥으로 수주에 걸쳐 장기간 투여하는 것이 기본이다. 판막 손상이 심하거나 항생제만으로 감염이 조절되지 않는 경우에는 손상된 판막을 제거하고 인공판막으로 바꾸는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다. 치료 기간이 길고 입원이 필요한 만큼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심장초음파로 판막 손상 여부 확인 가능 [그림=메디닉스DB]
평소 구강위생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심내막염 예방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칫솔질과 치실 사용을 꾸준히 하고 정기적으로 스케일링을 받아 잇몸 염증을 줄이면, 치과 시술 중 균혈증이 발생하더라도 그 정도를 낮출 수 있다. 잇몸에서 자주 피가 나거나 붓는 증상이 있다면 방치하지 말고 치과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인공판막을 가지고 있거나 선천성 심장병, 과거 심내막염 병력이 있는 사람은 치과를 방문할 때 반드시 자신의 심장질환 병력을 미리 알려야 한다. 담당 치과의사와 심장내과 주치의가 상의해 예방적 항생제 복용 여부와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 안전하며, 스스로 판단해 항생제를 임의로 복용하거나 반대로 생략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발치나 잇몸 수술 같은 치과 치료를 받은 뒤 1주에서 2주 이상 원인을 알 수 없는 발열이나 오한, 전신 피로감이 지속된다면 단순 감기로 여기지 말고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특히 심장판막질환이나 인공판막 병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작은 증상 변화도 가볍게 넘기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