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공부한 내용이 아침에 오히려 또렷하게 기억나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 적지 않다. 최근 수면 중 뇌파 변화와 기억 정리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낮 동안 습득한 정보를 뇌가 재구성하고 저장하는 능동적인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수면은 크게 비렘수면과 렘수면으로 나뉘고, 비렘수면은 다시 얕은 잠 단계와 깊은 잠 단계인 서파수면으로 구분된다. 하룻밤 사이 이 단계들은 여러 차례 순환하며 나타나고, 단계마다 뇌파의 형태와 속도가 뚜렷하게 달라진다고 알려져 있다.
얕은 잠 단계에서는 세타파와 함께 수면방추라 불리는 짧고 강한 뇌파 폭발이 관찰되고, 깊은 잠인 서파수면에서는 느리고 진폭이 큰 델타파가 주로 나타난다. 이러한 뇌파 패턴은 뇌가 특정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서파수면 동안에는 기억을 임시로 저장하는 해마와 장기 저장소 역할을 하는 대뇌피질 사이에 정보 교환이 활발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낮 동안 익힌 사실이나 경험과 같은 선언적 기억이 더 안정적인 형태로 강화된다는 설명이 나온다.

깊은 잠 동안 뇌는 기억을 정리한다 [그림=메디닉스DB]
반면 렘수면 시기에는 깨어 있을 때와 비슷한 빠르고 불규칙한 뇌파가 나타나며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이 단계는 자전거 타기나 악기 연주 같은 절차기억, 그리고 감정이 담긴 기억을 처리하는 데 관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연구자들은 서파수면에서 나타나는 느린 진동과 수면방추, 해마에서 발생하는 리플이라 불리는 짧은 파형이 서로 시간을 맞춰 함께 나타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뇌파들의 동조가 기억이 굳어지는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수면 시간이 부족하거나 수면의 질이 떨어지면 이러한 뇌파 활동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해 기억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여러 의학 학회는 성인 기준 하루 7시간 이상의 수면을 권고하고 있다.

뇌파 측정으로 수면 단계를 살펴본다 [그림=메디닉스DB]
나이가 들수록 서파수면의 비중이 줄어들고 얕은 잠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어 중장년층 이후 기억력 저하를 호소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다. 다만 이는 개인차가 크고 다른 건강 요인과도 맞물려 있어 단정하기는 어렵다.
카페인 섭취, 늦은 시간 전자기기 사용, 불규칙한 취침 시간은 서파수면과 렘수면의 비중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기 전 밝은 화면을 오래 보는 습관도 수면 단계 전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충분한 기억 정리를 위해서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는 규칙적인 습관이 도움이 되며, 오후 늦게는 카페인 섭취를 자제하는 것이 좋다. 낮잠은 20~30분 이내로 짧게 유지하는 것이 야간 수면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불면이 한 달 이상 이어지거나 낮 동안 기억력 저하와 집중력 문제가 뚜렷하게 느껴진다면 수면 전문의나 신경과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