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희귀 유전질환처럼 이미 발병한 병을 고치는 치료 수단으로 주로 활용돼 왔다. 최근에는 발병 위험이 높은 유전 변이를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미리 교정해 질병을 예방하려는 연구가 늘면서 이 기술의 활용 범위가 치료를 넘어 예방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특정 DNA 서열을 표적으로 삼아 자르거나 바꿔 넣는 유전자 교정 기술이다. 그동안은 혈액질환이나 대사이상처럼 원인 유전자가 명확한 희귀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잘못된 유전자를 고쳐주는 치료제 개발에 주로 쓰였고, 일부는 임상시험 단계를 거쳐 실제 치료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근 국제 학계에서는 이러한 교정 기술을 발병 이전 단계에 적용해 위험 자체를 낮추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정 유전 변이가 심혈관질환이나 대사질환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도 위험 유전자를 미리 조정해 질병 발생 자체를 막으려는 예방적 접근이 주목받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이 가능해진 배경에는 유전자가위 기술 자체의 정밀도가 높아졌다는 점이 있다. DNA 이중가닥을 절단하지 않고 염기 하나만 바꾸는 염기교정이나,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서열을 정교하게 끼워 넣는 프라임교정 등 차세대 기술이 등장하면서 의도하지 않은 부위가 손상되는 부작용 우려가 줄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분야는 심혈관질환이다.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 관여하는 특정 유전자를 교정해 평생 동안 발병 위험을 낮추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이미 발생한 질환을 되돌리는 기존 치료 개념과 달리 건강한 상태에서 위험 요인을 사전에 제거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유전 위험 상담을 받는 환자와 의료진 [그림=메디닉스DB]
암 예방 분야에서도 비슷한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유전성 암 발병 위험을 높이는 특정 변이를 지닌 경우, 증상이 나타나기 전 위험 유전자를 조정해 발암 가능성을 낮추려는 연구가 초기 단계에서 논의되고 있으며, 기존의 정기 검진 중심 관리 방식과 함께 새로운 예방 전략으로 검토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예방적 유전자 교정은 아직 대부분 연구 및 초기 임상시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국제 보건기구들은 유전자 교정 기술이 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생식세포 교정에 대해서는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예방 목적이라 해도 체세포 교정에 한해 신중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관련 학회를 중심으로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한 예방적 개입의 안전성과 윤리성을 검토하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당국은 신기술이 임상 현장에 도입되기 전 장기적인 안전성 자료 확보와 단계적 검증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유전자 교정 기술 안전성을 논의하는 연구진 [그림=메디닉스DB]
비용과 접근성 문제도 해결 과제로 꼽힌다. 유전자 교정 치료는 개발과 생산 과정이 복잡해 현재로서는 고비용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고, 예방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적용하려면 대상자 선별 기준과 사회적 형평성 문제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작용 관리도 중요한 과제다. 목표하지 않은 부위가 함께 변형되는 이른바 표적이탈 효과는 여전히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위험 요인으로 꼽히며, 예방 목적으로 건강한 사람에게 적용할 경우 그 위험을 더욱 낮은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전문가들은 예방적 유전자 교정이 상용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본다. 장기 추적 관찰을 통한 안전성 검증과 함께, 어떤 유전 변이를 교정 대상으로 삼을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함께 마련돼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예방적 유전자 교정은 임상시험 단계의 연구 영역으로, 일반인이 해외 비인가 시술을 통해 접근하는 것은 권장되지 않는다. 가족력이 있거나 관련 유전질환이 걱정되는 경우라면 자의적인 시술을 찾기보다 병원의 유전상담 클리닉을 통해 정확한 위험도를 평가받고, 국내외 공인된 임상시험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