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냉방이 강한 건물에서 오래 머문 뒤 몸살과 두통, 기침이 나타나면 흔히 냉방병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고열과 오한이 동반되고 숨이 차거나 기침이 심해진다면 물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냉방·급수시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레지오넬라증도 살펴봐야 한다. 특히 고령자와 흡연자, 만성폐질환자는 폐렴으로 진행할 위험이 있어 증상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질병관리청이 2026년 6월 공개한 감염병 연보에 따르면 2025년 국내 레지오넬라증 신고는 전년보다 188명, 41.6% 증가했다. 전체 법정감염병 발생은 감소했지만 레지오넬라증과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 등 일부 감염병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레지오넬라증은 연중 발생할 수 있으나 냉방시설과 급수설비 사용이 늘어나는 여름철에 상대적으로 많이 보고된다.
레지오넬라균은 호수와 하천 같은 자연환경에도 존재하지만, 건물의 복잡한 급수시설에 들어간 뒤 따뜻하고 정체된 물에서 증식할 수 있다. 균에 오염된 미세한 물방울이 공기 중으로 퍼지고 이를 호흡기로 들이마실 때 감염이 발생한다. 주요 감염원으로는 대형 건물의 냉각탑수와 샤워기, 수도꼭지, 목욕탕·온수 욕조, 장식용 분수 등이 꼽힌다. 일반적으로 사람 사이에서 일상적인 접촉이나 기침을 통해 전파되는 질환은 아니다.
에어컨을 사용한다고 모두 위험한 것은 아니다. 가정용 벽걸이·스탠드형 에어컨이나 자동차 에어컨은 물을 이용해 건물 전체를 냉각하는 냉각탑 방식이 아니어서 일반적인 레지오넬라균 증식원이 아니다. 위험은 주로 대형 건물의 냉각탑과 온수시설처럼 물이 순환하거나 고일 수 있는 설비를 제대로 세척·소독하지 않을 때 커진다.
레지오넬라증은 폐렴형인 레지오넬라 폐렴과 비교적 가볍게 지나가는 폰티악열로 구분된다. 레지오넬라 폐렴은 균에 노출된 뒤 대개 2일에서 10일 사이에 발열과 오한, 기침, 두통, 근육통, 숨가쁨이 나타날 수 있다. 일부 환자에게는 설사와 메스꺼움, 혼란 같은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반면 폰티악열은 독감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 뒤 특별한 치료 없이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같은 환경에 노출됐더라도 누구나 심하게 아픈 것은 아니다. 다만 50세 이상 고령자와 현재 또는 과거 흡연자, 만성폐질환자, 당뇨병·신장질환·암 환자, 장기이식이나 면역억제제 치료로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은 중증 폐렴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 호텔이나 병원, 목욕시설, 온수 욕조 등을 이용한 뒤 고열과 기침, 호흡곤란이 나타났다면 의료진에게 방문 장소와 물 시설 노출 사실을 함께 알리는 것이 진단에 도움이 된다.
예방의 핵심은 개인이 냉방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과 다중이용시설에서 물 관리 체계를 제대로 운영하는 데 있다. 냉각탑과 온수시설의 침전물과 물때를 제거하고 정기적으로 세척·소독하며, 물이 장기간 정체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숙박시설과 목욕시설, 의료기관처럼 고위험군이 자주 이용하는 시설은 급수설비와 샤워기, 온수 탱크의 위생 상태를 더욱 세심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
여름철 피로와 몸살을 모두 냉방병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열이 높고 기침과 숨가쁨이 심해지거나 의식이 흐려지는 증상이 나타난다면 신속하게 진료를 받아야 한다. 특히 폐렴 위험이 높은 사람에게는 물 시설에 노출된 시점과 증상이 시작된 날짜를 확인하는 것이 적절한 검사와 치료로 이어지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