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일이 힘들다기보다, 제가 점점 무뎌지는 게 더 신경 쓰이더라고요. 원래 전공의 시작했을 때는 환자 상태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했고, 집에 가서도 계속 생각이 났었는데요. 이제는 새벽에 콜 몇 번 받고, 아침 회진 돌고, 설명하고, 보호자 응대하고, 처방 정리하다 보면 하루가 그냥 통째로 지나갑니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뭔가 크게 해낸 느낌은 없고, 계속 밀리는 일만 겨우 따라가는 기분이 들어요.

얼마 전에도 당직 서다가 새벽 3시쯤 잠깐 의자에 앉았는데, 너무 피곤해서 멍하게 모니터만 보고 있었거든요. 그때 갑자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히 큰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그런 순간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게 좀 씁쓸했어요. 환자분들 앞에서는 티를 안 내려고 하지만, 속으로는 체력보다 감정이 먼저 닳는 느낌이 있습니다. 계속 누군가의 상태를 신경 쓰고, 실수하면 안 되고, 말도 조심해야 하니까요.

주변에서도 다 비슷하다고 하긴 합니다. 원래 이 시기가 제일 애매하게 힘든 시기라고도 하고요. 아직 능숙하다고 하기엔 부족한데, 그렇다고 마냥 배우는 입장만은 아니라서 책임감은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쉬는 날에도 푹 쉰 느낌이 잘 안 들고, 연락 오면 괜히 심장이 먼저 철렁합니다. 예민해진 걸 아는데도 조절이 잘 안 되네요.

다들 일하면서 이런 식으로 한 번씩 타이밍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버티다 보면 좀 둔해져서 괜찮아지는 건지, 아니면 중간에 제가 생활 패턴이든 생각하는 방식을 좀 손봐야 하는 건지요. 비슷한 시기 지나신 분들 있으면 어떻게 넘기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괜히 별일 아닌데 혼자만 축 처지는 건가 싶어서 한번 적어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