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당직 서고 아침에 병원 밖 나오면 날씨가 너무 멀쩡해서 더 허무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밤새 계속 콜 받으면서 뛰어다녔는데, 밖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그냥 평범하게 돌아가더라고요. 누구는 커피 들고 바쁘게 걷고, 누구는 이어폰 끼고 지나가고요. 그걸 보면 제가 방금까지 있던 시간이 진짜였나 싶을 정도로 좀 붕 뜹니다. 내과 쪽은 환자 상태가 갑자기 바뀌는 경우도 많아서 한순간도 마음을 못 놓겠는데, 그렇게 긴장하다가 문 열고 나오면 세상이 너무 아무 일 없다는 듯해서 괜히 더 지칩니다.

몸이 힘든 건 생각보다 버틸 만한 날도 있는데, 제일 애매한 건 계속 사람 상태를 보고 판단해야 하는 피로감인 것 같습니다. 완전히 틀리면 안 되고, 그렇다고 늘 교과서처럼 흘러가지는 않으니까요. 선배들 앞에서는 티 안 내도 속으로는 제가 놓친 게 있을까 계속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퇴근해서 누워도 바로 못 자는 날이 많고, 자다가도 그때 그 환자 수치나 표정 같은 게 한 번씩 떠오르더라고요. 이게 제가 예민해서 그런 건지, 다들 어느 정도는 비슷한지 가끔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진짜 힘든 날보다 애매하게 힘든 날이 더 사람을 갉아먹는 것 같아요. 엄청난 이벤트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계속 잔콜 오고, 설명 반복하고, 보호자 응대하고, 밀린 오더 정리하다 보면 하루가 증발해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내가 오늘 뭘 제대로 해낸 건가 싶은 마음이 들어요. 분명히 필요한 일을 했는데도 성취감보다 소모감이 더 크게 남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 집에 가서 밥 먹기도 귀찮고, 쉬어도 회복되는 느낌이 별로 없네요.

여기 계신 분들 중에도 비슷하게 번아웃 비슷한 감정 겪는 분들 있을까요. 거창한 해결책 말고, 그냥 이 리듬에서 조금 덜 닳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쉬는 날 억지로라도 밖에 나가는 게 낫던지, 아예 사람 안 만나고 잠만 자는 게 낫던지, 그런 사소한 거라도요. 병원에서는 다들 그냥 버티는 얘기만 해서, 오히려 익명으로는 좀 솔직하게 물어보고 싶었습니다.